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한국인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하인스 워드 시니어’로 그 당시 군인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는 제가 한 살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는 곧 이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난 엄마와 살고 싶었지만 당시 가정법원은 어머니는 영어도 못하고 자식을 부양할 능력이 없어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며 제가 어머니와 살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난 아버지와 새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나의 어머니 이름은 ‘영희 워드’이며 어머니를 만나서 다시 살게 되었을때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놀라우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세 곳의 직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아틀란타 공항에서 그릇을 닦았고 호텔에서 청소를 했으며 그로서리 가게에서 캐시어로 일했습니다.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돌아와서 다시 공항으로 일하러 가기전에 저의 아침 식사를 차려줍니다.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오셔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저를 위해 식탁에 점심을 차려놓고 다음 직장으로 달려 갑니다.
저는 아마도 어머니가 저에게 해 주신 그 모든 수고와 희생을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주신 교훈은 “언제나 너 자신을 낮추어라”입니다.
그동안 제가 운동선수로 우승하며 또 프로 볼까지 진출하며 오는동안 어머니는 제게 말합니다. “너에게 좋은 기회가 온 것을 감사하여라 그리고 겸손하여라”
어머니는 아직도 고등학교 식당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내가 찾아가서 어머니와 점심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자네 어머니는 이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신다네” 그런 말을 들을때 난 어머니가 몹시 자랑스럽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언제나 그랬듯이 힘들게 그렇게 살아 오셨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정부보조도 받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내셔날 풋 볼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Nobody given me anything...
위의 글은 조지아대학을 나와 지금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프로로 뛰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아들 ‘하인스 워드’선수가 인터넷에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올린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울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날을 앞두고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들과 이 글을 나누고 싶어 이렇게 적어 보냅니다.
백준희 주부
아이에아 거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