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임 (무용평론가)
모더니즘과 접목된 국악
지난 11일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국 전통 음악제’ 공연의 부제는 ‘Transfiguration’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예술이 한 무대에서 만나 또 다른 차원의 창조성을 이루어 내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황병기의 가야금 연주, 이애주의 창착무 등 한국의 전통 예술과 서양음악(김희경 UC샌타크루즈 음대교수 작곡, 제전 III)이 한 무대에서 하나의 주제로 공연되어 모처럼 미 주류사회에 우리 전통예술의 진수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황병기가 자신이 작곡한 ‘밤의 소리’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이번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황병기는 1부에서 자신의 곡인 ‘침향무’ ‘하림성’ ‘가야금 산조’ 등을 연주했다. ‘우리시대 최고의 예인’으로 불리며 이론과 실제를 완벽하게 구비한 연주가 황병기는 이 날 공연에서도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정중동의 정서를 극도의 절제된 기법으로 연주해 냈다. 모더니티가 더 이상 서양음악의 전유물이 아님을 미 주류 공연무대에서 보여주었다는 점은 이번 공연에서 얻은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었다.
대체로 신비로우며 서정적인 그의 연주는 언제나 한국 고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변주와 즉흥적인 기법으로 국악 연주에 또 다른 차원을 도입한 황병기의 모더니즘은 이번 무대에서도 거침없이 발휘되었다. 조화된 균형을 잃지 않는 극도의 세련된 연주에 시종 객석은 압도당한 분위기였다.
첫번째 연주곡 ‘밤의 소리’는 국악 사상 처음으로 창작된 현대 가야금 작품 ‘숲’ 중 한 곡이고 ‘침향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침향무가 실린 음반은 1979년 처음 출반된 이래 국악의 판도를 달리 인식시키는데 공헌한 명반이다.
무형문화재 27호 한영숙류 승무의 예능 보유자 이애주는 공연 2부에서 ‘제전 Ⅲ’의 연주에 맞춰 오랜만에 자신의 창작무를 미주 무대에 처음 선보였다. 한국의 타악이 가미된 미니 오케스트라와 멀티미디어 영상이 함께 동원된 이 작품에서 이애주는 40여분의 긴 시간 동안 솔로 연기를 통해 온 세계에 평화의 기운과 향기를 널리 퍼지게 하려는 춤꾼의 염원을 표현했다. 빛과 멀티미디어의 기능으로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즉석 창출된 이애주의 춤 이미지는 서양의 섬세한 선율과 강렬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 동양의 타악이 조화되어 매우 힘있는 장면들로 연출되었다. 연주와 무용 그리고 영상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앙상블 무대의 화려함이 관객들에게는 시각적 산만함으로 전달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다소의 아쉬움이 있었다.
서민정신과 노동, 신바람 등 한국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민중 춤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무용가 이애주의 창작은 사실 미주 지역에서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춤 예술과 이데올로기, 춤이 지닌 사회성에 대한 이애주의 춤 지향은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이제 다시 창작춤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이번 공연은 그런 이애주의 변모를 관찰할 수 있는 무대여서 한결 의미가 더했다.
공연장이 디즈니 콘서트 홀이었고 주류사회 공연이라는 공연 의도도 있었던 만큼 한인 위주의 공연보다는 앞으로는 보다 많은 주류사회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는 기획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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