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1년전인 지난 2004년 5월17일, 매서추세츠 주대법원은 “결혼을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합으로 제한하는 것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에 해당하며 이는 모든 종류의 법적 차별을 금지한 주헌장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매서추세츠를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전국 최초의 주로 밀어올린 ‘혁명적 판결’이었다.
그 이후 1년 동안 매서추세츠에서 탄생한 동성 부부는 모두 6,100쌍으로 현지 혼인신고 건수의 6분의 1을 이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반대가 워낙 심해 동성결혼이 제도화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13개 주가 지난해 11월 주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금지시켰고 18개 주가 주헌장 개정안을 채택했으며 16개 주가 이와 유사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일반의 정서도 아직은 동성혼의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USA투데이와 CNN이 공동으로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서 동성혼 ‘찬성’은 39%에 그친 반면 ‘반대’는 56%로 1년전의 68%에 비해 크게 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성혼 합법화 1주년을 맞아 AP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국 게이 & 레즈비언 특별대책팀의 매트 포먼 회장은 매서추세츠주 동성결혼 합법화 1년에 대한 평가를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말로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동성결혼 합법화가 사회질서의 붕괴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동성혼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 지난 1년간 우리가 얻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대로 동성결혼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인 ‘실험 아닌 실험’은 일단 성공적이었다. 강요된 ‘법안의 동거’를 통해 동성애자들의 성적 취향이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중의 심리적 방어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동성애가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옳고 그름의 윤리적 잣대로 따지려드는 것은 ‘이론상’ 옳지 않다.
민권운동과 함께 흑백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60년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더린 헵번이 주연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는 어느 날 딸과 함께 불쑥 나타난 ‘흑인 사위’로 인해 한 가정이 겪는 ‘문화적 충격’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면서도 자신의 딸이 흑인과 결혼한 사실에 충격과 감정적 갈등을 삭이지 못해 허둥대는 아버지의 이중적 모습은 2000년대 동성결혼 합법화 움직임에 당황하는 우리네 자화상과 너무도 흡사하다.
심리학자들은 무엇이건 낯설고 이질적인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방어심리를 유도하고 두려움과 거부감을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동성결혼 합법화 움직임이 불러온 혼란은 금기에 묶여 있던 이질적 문화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면서 불러일으킨 불가피한 파장이다. 하지만 인종차별 해소가 20세기 민권운동의 주된 테마였다면 21세기의 핵심 화두는 동성결혼 인정이 아닐까 하는 게 기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책을 한 권 추천하고 싶다. 동성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지만 좁은 감방에서 함께 복역하는 사회주의 혁명가와 몽상적인 동성애자가 인간적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질감을 극복하고 이해와 신뢰, 애정을 키워나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제목은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 마뉴엘 푸이그의 작품으로 아마존닷컴을 이용하면 10달러선에 중고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이강규<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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