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에 가는 건 좋은 데 애프터 파티가 영 마음에 걸려요. 학생들끼리 호텔 한 층을 빌려서 밤샘 파티를 한다는 데 거기서 무슨 일이 있을 지 누가 알겠어요”
지난해 이맘때쯤 이웃의 학부모와 함께 나누던 걱정이다.
많은 가정에서 지금 또 비슷한 염려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는 물가에 아이 내놓는 듯 불안하고, 아이는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느냐”며 퉁퉁 부어서 신경전을 벌이는 시기, 프롬 시즌이다.
미국 학교의 중요한 전통인 프롬은 이민1세 한인 부모들에게는 낯선 행사이다. 지금은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의 프롬 참석을 적극 지원해주지만 이전 세대만 해도 한인 자녀들은 프롬 등 교내 댄스파티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70년대 중반 초등학교 때 미국에 온 1.5세 주부는 “프롬 구경 한번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고 했다.
“부모님이 완고하셔서 여자아이가 남자랑 나가면 큰일 나는 걸로 생각하셨어요. 아이들이 미국 물 들까봐 무척 걱정을 하셨지요”
‘미국 물’은 곧 ‘탈선’을 의미했고, 탈선을 예방하려는 부모의 과잉보호로 ‘중요한 추억거리’를 놓쳤다고 그는 서운해했다. 참석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놓치면 몹시 서운한 것으로 프롬이 꼽힌다.
프롬이란 고교 졸업생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대답이 여러 가지였다.
“멋지게 차려입고 신나게 노는 행사”“고등학교 4년 동안 같이 지낸 동급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 함께 즐기는 파티”“졸업식이 눈물의 행사라면 프롬은 웃음의 행사”“청소년기를 마치고 성년으로 들어가는 자축연”…
걸음마 배우던 게 엊그제 같은 아들·딸이 어느새 커서 턱시도·드레스로 한껏 차려입고 파트너와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면 사실 부모로서 흐뭇하다. 자녀가 파트너를 찾아 댄스 파티에 간다는 것은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한 증거가 되고, 축제를 신나게 즐길 줄 아는 태도는 스트레스 많은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로 남는 것은 애프터 프롬 파티이다. “이 날만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며 밤샘 파티로 이어지는 게 요즘 프롬 추세이다. 부모로서는 친구들이 다 가는데 아이 혼자만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탈선 소지가 많은 상황으로 그냥 내보내기도 불안하다.
한가지 해결방법은 부모가 나서서 애프터 프롬 파티를 주선하는 것이다. 오렌지카운티의 한 주부는 2년 전 아들의 프롬 때 다른 부모들과 함께 선상 파티를 준비했다.
“15쌍, 즉 30명 아이들의 부모가 배를 빌렸지요. 알콜, 담배는 금지한다는 조건하에 아이들을 밤새 놀게 했어요. 엄마들은 뒤에서 구경 겸 감시를 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되고요”
그보다 간단한 방법은 자기 집을 개방하는 것. LA의 한 주부는 지금 대학교 2학년인 딸이 집에서 프롬 나잇을 보냈기 때문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아울러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신뢰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은 “우리 부모는 나를 믿어”라는 말이다. 부모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들은 쉽게 탈선하지 않는다.
‘프롬 나잇’은 몇 달 후 아이가 대학에 가서 매일 겪을 환경이다. 프롬, 혹은 애프터 프롬 파티에 아이를 보내며 부모가 불안해하는 탈선의 내용은 음주, 마약, 성관계 등. 집 떠나 대학에 가면 무방비로 노출될 요인들이다. 부모가 노심초사하며 울타리를 치는 일도 필요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바른 선택을 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혹 많은 ‘프롬 나잇’은 선택의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선택이며, 모든 선택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 그래서 매사에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을 프롬에 가는 아들딸에게 가르쳤으면 한다.
먼바다로 항해해 나가야할 배를 언제까지나 항구에 묶어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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