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말에는 향기가 배어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살펴 주려고 이리저리 마음 쓴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품성인가. 은밀히, 되도록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배려는 빛처럼 주변을 밝게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개인을 벗어나야 살기 편하다. 나를 너무 강하게 내세우면 우선은 내 주변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경원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게 된다. 서로 다른 개성끼리의 만남이기에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부부나 친구의 관계도 성격이 같으면 팽팽히 맞서게 되고 수평일 때 소리가 잦다. 한쪽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아량을 보이게 될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표면적으로 지는 것 같으나 상대를 알기에 지는 척 할 뿐이다. 이런 현명함을 보이는 사람의 삶은 편안하다. 나의 존재가 주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가끔씩 생각해 보면서 살 일이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대립을 목도할 때가 있다. 그것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하여 엄청난 결말을 가져오게 한다. 근간에도 가까운 친지 두분이 이념이나 사상의 양립이 아닌 지극히 사소한 일로 이견을 보여 소원해 지더니 급기야 불변의 진리를 하나씩 붙들고 절교했다.
“자아는 부지” 라는 말이 있다. 모든 어긋나는 관계는 나를 알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하는 일은 국정 교과서이고 남이 하는 일은 하찮아 보여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남은 나와 같지 않기에 무리하게 자기의 주장을 편다든지 지나치게 간섭을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한편 살짝 빗겨서 생각한다면, 나를 향한 간섭이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배려내지는 사랑으로 받아 들여 보면 어떨까. 나를 휘젓는다고 불쾌하게 생각하기 전에 조언으로 수용하면 결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물건은 새 것이 좋고 사람은 옛 사람이 좋다는 말이 있다. 관계는 곰삭은 젓갈 같은 경지까지 무르익어야 편하다. 나이 든 부부나 오래 된 친구 사이에 별반 오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상대의 의중을 알고 이해하며 품어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연륜을 두고 쌓아 가는 정이 그래서 귀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만 믿고 상대에게 쉽게 대하다가 의외로 거부당하여 상처를 받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데 오래되지 않은 관계에서 흔히 일어난다. 가까운 사이 일수록 예의 를 지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아집과 고집이 나이와 정비례하지 않아야 환영받으며, 나이가 들수록 과묵, 달관, 너그러움, 이 말과 친해질 때, 잘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 풋풋한 일화를 소개한다. 이스라엘 작가 슈무엘 아그논이 노벨상을 탈 무렵의 이야기이다. 예루살렘에서 손님을 태우고 달리던 택시가 어느 골목을 접어들자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용히 가다가 한 집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멈추었다. 이때 운전기사가 손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 집 앞을 지나갈 수 없어요. 까닭이 궁금하시죠. 지금쯤 저 집에선 작가 아그논씨가 글을 쓰고 있을 테니까.”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은 본인의 재질과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이겠으나 보이지 않는 주변의 배려도 한 몫을 한다는 좋은 예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고요를 방해할까봐 배려해 주는 아그논은 분명 행복한 작가이다.
배려는 인간 관계의 꽃이다.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상대방이 알고 모름에 상관없이 기쁜 마음으로 베풀기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가슴에 맑은 향기로 남을 것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폭넓은 사랑의 다른 표현이 배려이다.
유숙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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