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이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곳은 한성실업이었다. 이곳은 원사 등 온갖 상품들을 수입하는 회사였는데 김우중은 학창 시절 신문 돌리기에서 일등을 한 것처럼 단연 두각을 나타내 오너의 눈에 띄게 된다. 아무리 어려운 업무도 척척 해내고 월급 봉투를 통째 털어 부하 직원을 돕는 등 통이 커 모두 혀를 내둘렀다. 김용순 한성실업 회장은 일찍이 “김우중은 크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감옥소 들어갈 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우중은 이곳에서 6년 동안 일한 후 1967년 31세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한다. 무역업무에 자신이 있던 그는 어떤 국내 기업보다 먼저 해외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는 당시 한국 정부의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정책과 맞아 떨어져 대우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대우는 한국 정부가 세계화를 부르짖기 수십 년 전 이미 넓은 세계 시장에 눈을 뜨고 이를 목표로 사업을 벌여나갔다. 대우가 1969년 시드니와 싱가포르에 설치한 지사는 한국 무역업체가 세운 최초의 해외 지사로 기록돼 있다. 대우 실업은 창업 1년 만에 국내 수출기업 중 서열 141위, 2년째는 36위, 1972년에는 2위, 1978년에는 1위 자리에 당당히 올라섰다.
대우는 70년대 오일 달러를 벌기 위해 한국 기업이 앞다퉈 뛰어든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까지 발을 넓혔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미국 기업보다도 먼저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과 구 소련권까지 진출해 공장을 세우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1996년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의 우즈베키스탄 공장 준공식 때 카리모프 대통령은 김우중을 칭기즈칸에 비유해 “킴기즈칸”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대우는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면서 재벌 그룹 중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지나친 성장 위주의 경영으로 지나치게 많은 빚을 졌을 뿐 아니라 원화의 폭락으로 해외 부채 상환 부담금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9년 8월 대우는 결국 워크아웃이라는 극약처방을 받고 해체되기에 이르고 김우중은 그 해 11월 중국 엔타이에서 행방불명된 채 5년 8개월 동안 해외 각처를 떠돌았다.
그러던 그가 14일 결국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1989년 그가 쓴 베스트셀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처럼 넓은 세상에서도 더 이상 그가 있을 곳은 없었나 보다. 그 동안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도와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구속만은 면해 보려 했으나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봐주기에는 41조원의 분식회계, 9조2,000억 원의 사기대출, 25조원의 외환유출 등 국가 경제에 미친 피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김우중의 혜성 같은 부상과 몰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 경제의 강점과 단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표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 정상급 기업을 만들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오지도 서슴없이 뛰어드는 과감함, 아들 장례식 때를 제외하고는 쉬어본 적이 없다는 근면함, 불굴의 의지와 끊임없는 도전 정신 등등이야말로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지만 이와 함께 무리한 빚 끌어안기, 장부 조작, 편법과 탈법 등 경영 부실을 불러 결국 IMF 사태를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
김우중은 이제 첫 고용주였던 한성실업 김 회장의 예언대로 “말할 수 없이 크게 된” 후 “감옥소에 들어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검찰 조사 결과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비리들이 드러나면 한국 정·재계는 큰 충격에 휩싸이겠지만 대우 사태의 진상은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일이다. 전설의 기업 대우의 부침은 한국 기업사에 귀중한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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