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도 신혼 초에는 남편 앞에서 얌전했어요. 그런데 돈도 잘 벌지 못하면서 큰소리만 치고 일만 저지르니 너무 힘이 들었고 자연히 사나워졌어요. 이제는 내 눈치만 살피는 남편이 딱하기는 하네요.”
아는 동생과의 통화 내용이다. 12년 전 이민 와 첫 번째 일했던 곳의 주인 여자도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요” 했더니 똑같은 말을 했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느낀 것은 여자들의 능력이 남자보다 낫기 때문인지 또는 강하기 때문인지 남자 보다 여자의 기가 더 센 경우가 많다.
이곳 생활은 여자가 더 힘이 든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40이 넘어 이민을 온 경우 가지고 있는 기술도 능력도 특별히 없으면 부부가 같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또 남자가 모든 것이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으니 육체적으로 여자가 더 힘이 든다. 그럼에도 어깨가 처진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하면 될 것 같은데 모든 여건은 따르지 않고 돈을 벌어 가장의 체면을 유지하고픈 데 미국이 어디 돈벌기가 쉬운 나라던가? 남편의 위상은 작아지는데 아이들은 예전처럼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더구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사회인이 되면 대견하고 흐뭇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아들이 취직을 한 후 그 동안 키워주시느라 고생 하셨다며 내게 카드 하나를 만들어 주고 주말마다 외식을 시켜줬다. 집안의 돈 낼 고지서를 아들이 내주는 것이 나는 신이 났는데 남편은 싫어했다. 남편은 아들에게 “야! 임마 싫어, 네가 사주는 것 왜 먹니? 나도 돈 있어” 하던가 통장에 잔고가 넉넉지 않음에도 “내가 낼 꺼야”했고 내게는 “그 애가 주는 돈 받지마. 남편을 뭘로 보고. 나 아직 능력 있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심정을 이해 못했으나 서서히 그것을 받아들이는 남편을 보니 이제는 남편이 딱해진다.
나 또한 때로는 목구멍까지 하고 싶은 말이 올라오고 남편을 한번 이겨보고 살아볼까 하다가도 그렇게 하면 남편이 더 힘이 들것 같아 참곤 한다. 나는 동생에게 “너 우리 친정 집 얘기했지? 잘 살았던 우리 집이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우리 어머니의 위상이 내려감은 물론이요 생활 또한 내리막길이었어. 남편은 집안의 대들보야. 그리고 여자는 남편의 옆에 버티고 있어 주어야 어느 정도의 힘을 받고 살수 있는거야” 했더니 “언니는 뭘 몰라” 한다. “모르기는 왜 모르니. 남편의 위상이 올라가야 너도 올라감을 명심해라.”
얘기하면서도 나만 20세기를 사는 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용하 웨스트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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