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온다. 설마---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차고, 헉헉거리며 뛰고 있지만 쉴 수가 없다. 두고 온 차를 생각하면.
요즘 들어 부쩍 차가 말썽을 부리고 있다. 지난번엔 시동이 걸리지 않아 거라지에 가서 수리를 하고 왔는데 또 서다니. 이번엔 아주 확실하게 길 한 복판에서 섰다. 게다가 좌회전 차선의 맨 앞에서. 시동을 다시 걸어 보려고 한번 두번, 하지만 묵묵 부답이다. 뒤에선 짧은 좌회전 신호에 출발을 하지 않는 차를 앞에 두고 일렬로 들어선 차들이 몇 번씩 빵빵거리더니 옆 차선으로 돌아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생각을 했다.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이 한적한 곳에는 상점도 하나 없고, 다행히 집 가까이에 와 있었던지라 차는 비상등을 켜 놓고 뛰기 시작했다. 그래, 1 마일 정도만 가면 아는 집이 있다.
마침내 전화를 해 견인차를 부탁 해 놓고 친구의 차로 다시 현장에 돌아 와 보니 거기엔 벌써 소방차, 경찰차, 견인차가 먼저 도착 해 있었고 이 정체 불명의 차를 검색하고 있는 듯 했다. 짧은 영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불쌍한 동양 여자를 지켜보던 경찰관이 오히려 고맙게도 차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고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이 해프닝은 오래 전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의 무모한 용기덕분에 생긴 일이었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아직 정보도 불충분하고 무엇을 구입하든지 궁색했던 터라 10년도 넘은 이 미국 차를 싸다는 이유 하나로 덥석 구입했으니 이런 저런 이유로 거라지를 하루가 멀다하고 들랑날랑했던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커다란 6기 통의 고물차에 올라 창문을 활짝 열고 문 루프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체사픽 브리지를 지나 윌리엄스버그까지, 스카이웨이를 타고 워싱턴을 지나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저지, 뉴욕까지, 동부의 도시들을 누비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며칠 전 또 누가 새 차를 살짝 긁어 놓았다. 아이 학교 주차장에서 누군가 차를 빼다 뒷 쪽 트렁크를 보기 흉하게 찌그러트리고 도망가 바디 샵에 갔다 온지 얼마 안되어 그런지 이젠 조그만 긁힘에도 기분 나빠지고 상처받는다. 요즘 들어서는 원래부터 찌그러져 있고 약간의 긁힘은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던 그 추억의 탱크 차가 더 편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정미진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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