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렉시코 구국경검문소를 배경으로 임피리얼 한인회의 박영한(사진 왼쪽부터), 김춘기 전 회장, 박천수 회장, 김윤선씨가 힘찬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서준영 기자>
열사의 국경타운 4백여 한인 뿌리
‘5일장터’로 출발 막강한 상권 다져
<칼렉시코-이석호 기자> 수은주마저 땀을 흘리는 지난 16일 오후 4시. 10대 히스패닉 2명이 국경순찰대의 경계를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철망을 가르고 칼렉시코로 건너왔다. 국경 끝 도시, 칼렉시코에서는 국경순찰대와 멕시칸 사이에 숨바꼭질 놀이가 하루 종일 반복되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자리한 이 도시는 뜨거운 열기를 타고 바람처럼 흩날리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흩날림에 묻혀온 주민 2만명 중 400명의 한인이 이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의 틈바구니에서 한인들은 사막에 씨를 뿌린 선인장처럼 강한 생명력을 꽃피우고 있는 것이다.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면 맞닥뜨리는 다운타운은 국경 무역으로 살아가는 칼렉시코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다. 멕시칸 보따리 장사들로 가득 찬 이 곳에서 한인들은 의류와 잡화점을 운영하며 중개무역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1979년 ‘5일 장터’인 라팔마스에서 출발한 한인들은 어느새 다운타운 빌딩의 10%를 소유할 정도로 비즈니스 역량을 높이 쌓아 올리고 있다. 또한 제1호 한인 부동산 에이전트, 한의사, 경찰 등이 속속 탄생하며 한인 사회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한인 커뮤니티가 성장하며 과거 보이지 않았던 한인 밀입국자도 슬슬 고개를 내밀고 있다. 칼렉시코 구 국경검문소에서 자전거 순찰을 돌고 있던 한 순찰대원은 “대부분의 밀입국자가 멕시칸이지만 한인도 심심찮게 단속된다”고 말했다.
조용한 사막의 도시 칼렉시코는 2005년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국경을 둘러싼 민병대(Minuteman) 창설로 인권단체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고, 철조망 건너 멕시칼리에서 들려오는 실리콘 밸리 계획으로 경제계의 눈길도 받고 있다.
하지만 UC버클리 입학을 앞둔 10대 한인 소녀는 “진짜 미국사회로 떠나고 싶어요”라며 긴 한숨을 내쉬며 도시 바깥으로의 탈출을 꿈꾼다. 칼렉시코의 미래가 새로운 삶을 꿈꾸는 2세 한인들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 변화를 앞둔 이 도시의 한인들은 고민과 기대로 불안한 미래를 맞닥뜨리고 있다.
②‘미-멕시코 접경도시’칼렉시코
멕시칸 하루 3만명 입출국 ‘북적’
국경수비대·FBI ·ICE 등 수사기관
“밀입국자 색출” 감시의 눈 번뜩
‘아메리칸 드림’쫓고 쫓는 숨바꼭질
국경의 밤은 불야성을 이뤘다. 16일 어둠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자 국경수비대원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야간 조명을 켜며 순찰을 시작했다.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 묻자 그는 “얼굴이 노출될 경우 밀입국 조직의 타겟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미국과 멕시코를 가르는 5미터 폭의 샛강은 밤새 쉬지도 못한 채 조명등을 반사시키기에 바빴다.
국경도시인 칼렉시코에는 각종 요원들로 넘실거린다. 마약 단속에 나선 DEA, FBI, ICE 등 연방기관을 비롯해 각종 수사기관의 요원들이 24시간 국경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 이를 두고 한 한인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일 것”이라며 웃었다.
넘쳐나는 국경 통행자들로 인해 칼렉시코는 구국경검문소와 신국경검문소로 나누어 운영 중이다. 구국경검문소에는 걸어 들어오는 입국자가 집중되는 반면 말끔한 신국경검문소로는 자동차가 미국으로 미끄러지듯 흘러들어 온다. 미국의 입인 칼렉시코로 매일 3만명이 제 집 드나들 듯 한다.
구국경검문소 동쪽으로 높이 쳐진 철조망은 철봉으로 높이를 높였다. 까치발을 들면 빼곰이 보이던 미국이 멕시칸 소년의 시선에 들어오기는 쉽지 않게 변해 버렸다. 이와 달리 서쪽으로 펼쳐진 샛강은 허탈하게 미국과 멕시코를 갈라놓았다. 국경의 공백인 샛강에서는 채 10세가 돼 보이지 않는 멕시칸 소녀가 강아지와 수영을 하고 있다.
국경을 둘러싼 밀입국자와 국경수비대의 숨바꼭질은 17일에도 계속됐다. 전날 철봉의 틈 사이로 국경을 통과, 밀입국자의 판정승으로 끝난 숨바꼭질은 이날 국경수비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60대가 넘어 보이는 멕시칸은 뒤로 수갑을 찬 채 국경수비대의 밴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국경수비대는 이 숨바꼭질 놀이에서 최종 승자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넘어오면 추방하고, 또 넘어오는 이 다람쥐 쳇바퀴 속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멕시칸의 꿈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볕이 한풀 꺾인 저녁시간 칼멕시코의 한인 학생들이 테니스를 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칼렉시코의 한인들
다운타운 빌딩 10% 한인이 소유
대형 할인점 진출 위기 등 딛고 우뚝
의류업·잡화·주유소 주력 업종
주재원 출신들‘제2의 고향’정착많아
칼렉시코의 한인 사회는 ‘유일한’ ‘첫 번째’란 타이틀을 가진 한인이 많다. 칼렉시코 경찰국(PD)에 근무하는 제이슨 정(35)씨가 유일한 한인 경찰이며, 지난 달 한의원을 개업한 ‘엘센트로 침술원’의 황일훈(61)씨와 센추리21에서 근무하는 김윤선(47)씨는 첫 번째 한의사, 부동산 에이전트로 칼렉시코 한인사에 이름을 올렸다.
한인 인구 400명의 칼렉시코 한인 사회는 꿈에 부풀어 있다.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멕시칼리는 올해 4억 달러가 소요되는 제2의 실리콘 밸리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멕시칼리의 미국 관문인 칼렉시코에 주택과 상업 등 대규모 개발 붐이 불 것이란 기대에 지역 주민들은 화색을 감추지 못했다. 또한 샌디에고 공항의 포화에 따른 배후 공항 입지로 칼렉시코가 유력한 물망에 오르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도약을 꿈꾸는 칼렉시코의 한인들은 이미 두 차례 위기를 극복한 저력을 갖고 있다. 국경 무역이 번창하던 1980년대에는 ‘주머니에 돈이 넘쳐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지만 대형 할인점인 월마트의 공략이 본격화되며 조그만 잡화와 의류점을 운영하는 한인 비즈니스는 큰 타격을 받았었다. 덩달아 터진 멕시코 경제위기는 페소화 가치를 급락시키며 멕시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한인 사회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인들은 대형 할인점의 틈새를 노린 재빠른 상품 순환 등을 통해 위기를 헤쳐나갔고 칼렉시코 다운타운의 빌딩 등을 연이어 인수, 전체 시 인구의 2% 힘으로 칼렉시코 경제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의류업, 잡화 등에서부터 모텔업, 주유소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은 주력 업종을 확대시키고 있다.
칼렉시코 한인 사회의 특징은 주재원 출신 비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이같이 높은 주재원 비율은 국경 건너에 LG전자와 대우 오리온전기가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재원 근무를 끝낸 후 ‘귀국이냐, 정착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한인들이 정 들고, 국경 무역이 용이한 칼렉시코를 제2의 고향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대우 출신으로 부동산 에이전트로 활동 중인 김씨는 “한인 술집이 한 곳도 없는 이 곳이 자녀 교육 환경도 좋고 경쟁이 치열한 대도시에 비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며 칼렉시코 한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유를 설명했다.
다운타운에서 의류업을 하는 김춘기(왼쪽부터)사장과 12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는 히스패닉 종업원인 아델라와 마리가 한-히스패닉 우호를 보여주고 있다.
“우린 한-히스패닉 갈등 몰라요”
의류업 종사 김춘기 사장
첨예한 노동 송사로 대립하는 LA의 한-히스패닉 갈등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칼렉시코만의 특징이다.
한-히스패닉 우의의 평탄한 프리웨이는 의류업을 하는 김춘기 사장이 12년째 두 명의 히스패닉 직원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한인들은 “길거리에서 자동차 고장나면 백인도, 동양인도 아닌 히스패닉이 제일 먼저 도와준다”고 입을 맞춰 히스패닉 칭찬에 열을 올릴 정도다. 한인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히스패닉 고교생 말리사 알란조는 심지어 한인 교회에 얼굴을 내비칠 정도다. 그는 “비랑 신화가 제일 좋아요”라며 찰떡 같은 한국인과의 궁합을 자랑했다.
■ 엘 센트르‘사우스 웨스턴고’
자녀교육 열성
명문대진학 늘어
‘차세대들’쑥쑥
칼렉시코에서 북쪽으로 5마일 떨어진 엘 센트르의 사우스 웨스턴 고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오후 6시가 되자 테니스 채를 부여잡은 한인 학생이 한 명, 두 명 몰려들기 시작했다. 20여명이 넘는 한인 학생들은 매일 함께 테니스를 치며 칼렉시코의 한인 사회를 이끌어 갈 동량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칼렉시코에는 ‘옆 집 밥숟가락 숫자까지 다 안다’는 1960년대 한국의 유행어가 아직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가족이란 두 글자 속에 아직까지 한인 사회를 담아 둘 수 있는 소박함이 풍겨져 나왔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좋은 학군에 버금갈 정도라고 지역 주민들은 자랑한다.
다운타운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설증혁(47) 회장은 “매년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꾸준히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한인 2세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 학생들의 학력은 유해환경을 찾을 수 없는 주변과 방학이면 LA의 기숙사형 학원으로 자식들을 보내는 부모들의 열성 때문이다.
유일한 한인 경찰 “한인들 입·손 역할 기뻐”
■ 제이슨 정 경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사라져서 기쁩니다”
인구 400명의 칼렉시코에도 한인 경찰이 든든한 지킴이로 버티고 있다. 2002년부터 칼렉시코 PD에 근무하고 있는 제이슨 정(35·사진)경관이 그 주인공이다.
오렌지카운티 풀러튼 출신인 정 경관은 칼렉시코에서 먼저 일을 시작한 친구의 권유로 칼렉시코PD에 지원, 400명 한인의 지팡이로 활동하고 있다. 한인 공무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정 경관은 한인의 입과 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정 경관은 “한인들을 도와주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면서 “‘물건을 안 바꿔준다’는 등 한인 업주들에 대한 사소한 불만이 의사소통 미숙으로 발생했는데 일을 시작하고 이런 문제들이 사라져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올해 1월 결혼해 신부를 풀러튼에 남겨둔 정 경관은 주말 기러기 생활을 기꺼이 감내하며 칼렉시코의 파수꾼 역할에 즐거워하고 있다. 정 경관은 “사람들이 착해 좀도둑이 대부분이지만 국경도시 특유의 역동성이 있어 일이 즐겁다”고 웃어 보였다.
글 이석호·사진 서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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