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가능한 사회가 기업 투자의 바탕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에 미국 땅을 처음 밟고, 뉴욕 맨해턴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 들어설 때까지는 기시감(deja vu)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나 광경이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미군 시레이션에 섞여 나온 초컬릿 맛을 본 이후, 신문, 방송, 영화 등의 대중 매체에서부터 일상의 소비활동까지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진행된 미국 문화의 세례는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 꽤나 그럴 듯한 예상치를 만들어 주었고, 막상 눈에 와 닿은 것은 으레 그러할 것의 확인이랄까?
그러나 좀 유심히 보니 중간중간 한글 간판 몇개 달고 사람들만 조금 바꾸면 서울 종로의 어느 한 모퉁인들 어떠랴 싶었다. 차를 운전하여 출근하고, 주말이면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대형 창고형 매장에서 크레딧 카드로 물건을 사는 것 또한 비슷하였다.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이겠지만, 한국이 그간 알게 모르게 상당히 미국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세월이 좀 흐르고 여기 저기를 제법 기웃거렸다고 생각할 무렵, 미국의 크기가 그 실제의 치수로 다가와 주눅들게 했는데, 필자를 더욱 부럽게 만든 것은 단순한 규모보다는 그 배치의 장대함이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서 읽은 프랑스 정치가 알렉시스 토크빌의 광대한 미국의 자연에 대한 서술은 150여년이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이같이 장대한 자연에 인간의 상상력이 보태져, 구석구석 도로가 연결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문명의 촉수가 닿아 아메리카 합중국이란 시스템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덩치이면 좀 허술하겠지 마음놓고 있다가, 잠깐 일 보러간 사이 차에 붙은 주차 딱지를 흘기며, 생각보다는 그물이 촘촘함을 깨닫게 되고. 또 이 거대한 수레바퀴가 꽤나 긴 안목의 밑그림을 가지고, 눈에 띄게 빠르지는 않지만 시나브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큰 일들이 웬만큼은 다 요량이 되어 있다보니, 어느 날 사회의 근간이 뒤흔들려 어제까지 멀쩡하던 것이 오늘 갑자기 어떻게 되는 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내일 또한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게 되는데, 이 예측 가능성이야말로 기업의 투자활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높은 사회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은 개인의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사람들은 차분히 일생 동안의 재정계획을 세우고, 이러한 재정계획에 터잡아, 금융상품을 이용하여 현재와 미래의 소득을 전 일생에 걸쳐 골고루 배분하게 된다.
예를 들면, 401(k)는 현재의 소득을 지금 소비하지 않고 미래에 소비하려는 의사이며, 30년 주택 대출을 이용하여 집을 사는 것은 미래의 소득을 사용하여 현재의 소비를 실행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삐쭉 삐쭉한 주가 차트가 아니라 경사가 완만한 이동 평균선이 된다.
(213)892-9999
박준태
<퍼스트스탠다드은행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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