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 60주년 8.15 광복기념일을 맞이하여 앞서 희생된 우리들의 애국선열에게 엄숙히 머리 숙여 명복을 비는 한편, 조국을 광복기념일을 경축하면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받은 교훈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처음부터 자주적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는 국제환경 가운데서 시작되었던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열강의 도움은 거의 없었고, 도리어 일제의 침략을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제를 지원한 흔적을 볼 수 있다.
1918년에 종결된 1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전승국으로서 열강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1919년 조선에서 3.1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나 1931년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에도 열강의 태도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구한말 우리의 의병전쟁에 대한 청국의 소극적 태도도 그렇거니와 3.1 독립운동 직후 미국의 상원에서 “한국독립 동정안”을 부결시켰던 사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 광복군에 대한 중국정부의 소극적인 지원 등을 보면, 당시 우리 민족이 결사적으로 갈망하는 독립에 대해 열강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우리의 독립운동은 한편으로는 외교를 통해서 진행하고 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역량의 신뢰에 바탕을 둔 독립운동으로 무력에 의해서만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의병전쟁을 시작으로 1920년대의 간도독립군을 거쳐 1930년대의 통합독립군과 1940년대의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독립전쟁이 그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다. 또한 애국의사들의 의열투쟁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비롯하여 1920년대 “의열단” 투쟁과 1930년대의 “애국단” 투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유례없는 간악한 식민지 통치방법에 맞서 투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강력한 자주독립 정신으로 무장된 항일독립운동이었다. 또한 독립운동사를 통해 우리가 교훈을 받는 것은 민족의 단합정신이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민족역량의 신뢰에 바탕을 둔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주의(主義), 주장(主張)과 지위(地位), 지역(地域)을 초월한 대동단결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배웠다.
끝으로 우리의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강조해야 할 점은 몇몇 소수인이나 개인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영웅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의 역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의병전쟁이나 3.1 독립운동을 비롯하여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일제 말기의 무장 항일투쟁이나 애국지사들의 지하 독립운동 등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문자 그대로 “민족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앞서 독립운동사의 교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민족역량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단합.단결하여 분단된 국토의 통일과 분열된 민족의 통합이라는 대과업을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할 것을 광복기념일을 맞이하여 다시한 번 굳게 다짐하는 바이다.
2005년 8월
대한민국 광복회 회원 서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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