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포커스] 무조건 주인공 괴롭히는 캐릭터보단 이유있는 라이벌로 ‘진화’
안방극장에서 독한 남자, 독한 여자가 사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악역의 실종시대’다.
최근 지상파 방송 3사를 누비는 드라마들을 눈여겨 보면 주인공을 못살게 구는 악역의 성격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올해 최고의 브라운관 히트상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경우도 악역 없는 드라마로 명성을 날렸다. 전형적인 인물 관계도로 따졌을 때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연적인 ‘희진’(정려원)은 악녀여야 마땅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희진에게 오히려 주인공 보다 근사한 옷을 입혔다.
아름답고 똑똑하며 선량한 희진은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싶은 이상형의 여인상에 근접해 있었다. 동명의 원작소설에 나온 것 이상으로 풍부하고 비중있게 형상화된 희진이라는 캐릭터는 천사 대 악녀의 뻔한 갈등 구조를 비웃으며 ‘내 이름은 김삼순’에 색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었고, 드라마를 성공으로 견인한 한 축이 됐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SBS 인기 월화드라마 ‘패션 70s’에서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얄궂은 공식은 깨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전면에 나선 두 여인은 ‘더미’(이요원)과 ‘준희’(김민정)이다. 그런데 더미 대신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패션디자이너로서 야심을 드러내는 준희는 착하고 불쌍한 더미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악녀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모짜르트를 시기한 샬리에르 같은 한국드라마의 ‘넘버2’ 여인은 눈을 치켜 뜬 채 열등감을 감추거나 음모와 술수를 서슴치 않으며 뻔뻔하게 ‘미운 짓’을 일삼곤 했다.
그러나 ‘패션 70s’은 준희한테 어쩔 수 없고 불가피한 곡절을 설득력있게 부여해 시청자에게 미움 보다는 오히려 비운의 ‘안티 헤로인’이란 연민을 자아내고 있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는 자책으로 사형을 택한다는 막판의 극적인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준희를 향한 시청자의 감정은 더욱 애틋하게 이입되고 있다.
또하나의 ‘마니아 드라마’로 불리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변호사들’에도 무작정 미워하기에는 찜찜한, 알쏭달쏭한 인물이 나오고 있다. 정혼자를 버리고 유능한 변호사로 변신한 뒤 비리세력과 손잡고 정의의 반대길을 가는 ‘석戍?김성수)는 엄밀히 말하면 악인이다.
그러나 석기 역시 여린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사연이 밝혀질 듯 말 듯 신비감있게 덧칠해지면서 시청자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
어차피 절대 악, 혹은 절대 선의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뇩?그럼에도 이전 드라마들은 주인공을 돋우는 장치로 악독한 캐릭터를 단순 혹은 유치하게 만드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나 요즘 안방극장에 나타나고 있는 ‘악인의 실종’ 현상은 인간에 대한 드라마의 통찰력이 좀 더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달라진 눈높이를 반영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조재원기자 mii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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