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초청하여 저녁을 대접한 뒤 주인이 “별로 차린 것도 없는데 맛있게 드셨는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으레 하는 인사다. 이에 대해 손님은 “아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파티를 주최한 주인 쪽에서 “맛있게 먹었죠?”라고 묻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습니까, 기가 막히게 맛있었죠?”라고 말한다면 손님 입장에서는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네”라는 대답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관광에서 이같은 ‘옆구리 찔러서 절 받기’식의 대화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아리랑 공연에서는 좀 심하다. 구경하기 전부터 안내원이 관광객들에게 “오늘 공연 보시면 여러분이 정말 놀라실 겁니다. 기가 막힙니다. 정말 감동하실 겁니다”라며 ‘정말’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되풀이한다.
그러나 영화도 누가 “너무 좋다”고 떠들면 보는 사람의 감동지수가 떨어지는 법이다. 아리랑 공연을 보고 나면 “재미있다” “감격했다”보다는 “무서운 사람들이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섬뜩해지게 마련이다. 북한 안내원은 이쪽 심정도 모르고 “기가 막히죠? 아마 여러분이 너무 놀랐기 때문에 눈이 상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라며 자화자찬이다. 이 북한식 코미디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고는 한다.
왜 가슴이 섬뜩해지느냐 하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카드섹션의 글자가 ‘조국 해방’이고 다음이 ‘조국해방의 은인이신 어버이 수령님께 최대의 경의를 드립니다’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령의 유훈은 조국통일’이라는 카드섹션이 또 한번 등장한다. 해방이라? 아니 그럼 이 사람들이 남한을 해방시키겠다는 소리 아냐? 무력 통일하겠다는 이야기인가? 헷갈리기 짝이 없다.
내가 정말 놀란 것은 북한인 10여만명(공연자 6만명, 북한 지방에서 올라온 일반 관람객 수만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퇴장하는 광경이었다. 경기장 주변에는 전기를 아끼느라 불을 꺼놓아 캄캄한데 그 어둠 속에서 이들은 경보에 가까운 속도로 빨리 걷고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움직이면서 경기장 외곽으로 나가자마자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었다. 퍼레이드 쇼가 아니라 전투훈련의 연장이었다. 실제 북한에서는 봄 농사 돕는 것을 ‘봄 전투’ 가을추수를 ‘가을 전투’라고 부른다.
북한은 모든 것이 전투적이다. 사람들의 말씨도 전투적이고 ‘아리랑 공연’도 전투적이다. 쇼가 아니라 훈련된 질서의 과시 쪽에 가깝다. 어느 나라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주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쇼다.
윗사람의 명령에만 따르는 조직의 단점이 있다. 조직원들의 창의력이 없다. 복종에는 강하지만 누가 명령하지 않으면 배터리 빠진 장난감처럼 서 버린다. 공무원들이 퇴직금으로 장사를 하다가 다 날리는 것도 명령복종에만 강하고 창의력에 약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민들의 체질개혁부터 서둘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기자가 아리랑 공연을 구경한 것은 3년 전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이 자랑하는 것은 전투적인 자세다. 내용이나 진행도 똑같다. 도대체 변화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의 아리랑 축전은 북한의 강점과 취약점을 다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은 구경할 만한 관광코스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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