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최진규가 ‘선사’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실로 엄청난 인생유전을 겪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는 산세가 좋은 경북 성주군 가야산 중턱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산에 다니며 풀과 나무를 익혔다. 그후 수많은 ‘약초쟁이’들과 ‘향토 명의’들과의 교분을 통해 배움을 얻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가족의 불행은 그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겨줬고, 급기야 두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연은 그에게 ‘약초쟁이’의 인생을 가도록 기회를 줬다.
최선사가 향토의학의 길에 들어서 한국 최고 수준의 ‘내공’을 쌓기까지의 과정을 그 직필을 빌려 알아봤다.
자연이라면 뭐든지 좋아했고 사람과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싫어했다. 산에서 작은 꽃 한 포기나 조약돌 한 개와 함께 종일을 놀아도 행복하고 실증이 나지 않았지만 사람과 함께 있으면 한 순간이 십년이나 되는 것처럼 괴로웠다.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가혹한 질병의 희생자들이었으며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어느집 마당에 있는 개집속에 몰래 들어가 개를 껴안고 잠을 자기도 했는데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게 보낸 밤이었다. 어려서부터 인간세상을 떠나 산에서 사는 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주 오래전에 미쳐서 죽거나 폐인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풀숲에서 지내거나 나무위에서 지냈다. 내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도 없었다. 나의 스승은 집 뒤에 수백년 묵은 다람쥐 구멍이 수십 개 있는 늙은 밤나무와 거대한 떡갈나무였다. 그 나무들은 내게 아버지요 어머니였다. 나의 우주목(宇宙木)이었다.
다섯 살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산을 다녔다.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배웠다. 일곱 살때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학교보다 산이 좋아 약초캐는 노인들을 따라 여러날 산속에서 생활하는 날이 많아 학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가구에 여러 가지 산수 그림이나 문양을 새기는 조각회사에 취직하여 목공예를 배웠다. 이런 저런 사양끝에 미련 없이 조각칼을 던져버리고 비산공단 염색공장 잡역부로부터 안경공장, 철공소 직공, 인쇄소 직공, 공사판의 막노동꾼, 경비원, 중국집 배달부, 방직공장 가술자의 조수, 화가의 조수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그후 서울서 대구로 내려와 팔공산 근처에서 낮에는 약초를 캐고, 저녁에는 경비원으로 일했다. 21세가 되었을 때 병무청에서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러나 혈압이 200을 넘어서자 3차례의 검사 끝에 징집이 면제됐다. 이처럼 허약한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것이 면제이유였다.
이때 육신의 탈을 벗어버리고 죽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위안이었다. 그 뒤로 3년동안 자살을 생각하며 지냈다. 차리리 없는 것보다 못한 몸과 마음이 모두 중병이 든 가족들과 병들어 죽어가는 나의 육신이 절망에 지친 영혼을 이끌고 있을 뿐이다.
그 무렵 중병을 앓던 아버지와 열한 살 된 남동생이 낙동강에 목욕을 하러 같다가 물에 빠져 죽었고 나보다 세 살 아래인 여동생도 심하게 앓아 병원을 전전하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영혼에 병이 들자 곧 육신에도 무시무시한 병이 찾아왔다. 어느 날 수면제 50알을 몇 군데 약국을 통해 구입, 팔공산으로 올라갔다.
화강암 절벽 한쪽 끝에 한 사람이 간신이 누울 만한 테라스가 있고 그 아래는 수십 길 수직절벽이며 위쪽도 매끈한 몇 길 바위절벽으로 흔적 없이 육신을 버리기에는 안성마춤인 장소였다. 수면제에 취해서 깨어나지 않아도 죽을 것이고 좁은 바위틈에서 잠을 자다가 아래로 떨어져도 죽을 것이었다. 죽은 다음에 시체도 아주 오래 동안 발견되지 않을 것이고 아니면 영영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수면제 50알을 먹고 곯아 떨어졌는데 얼마 뒤에 무심한 하늘에서 소낙비가 한참 쏟아부었다. 이미 반쯤 시체가 된 내몸은 세찬 빗줄기에 움찔하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10미터 쯤 내려가다가 소나무 가지에 엎어진 체 걸렸다. 그리고는 먹은 수면제를 몽땅 토해 버렸다. 그다음 소나무 가지에 엎어진채로 오래오래 잠을 잤다.
사흘이 지난뒤 나는 지독한 추위와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몸을 던지려는 순간 팔뚝만한 살모사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죽을때 죽더라도 저놈한테 물리는 건 기분 나쁘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놈이 사라질때를 기다리다 더덕냄새가 진하게 나 옆을 보니 불에 타 그을린 참나무 그루터기 옆에 칡넝쿨로 착각할 만큼 굵은 더덕넝쿨이 눈에 띄었다.
죽는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5킬로그램은 족히 넘을 더덕을 캤다. 힘이 솟구쳤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때 결심했다. 이제 내 모든 기쁨과 영광과 추억을 풀뿌리에서 얻을 것이다. 이로부터 훌륭한 약초꾼, 민간의학자가 되는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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