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1664년 요하네스 베르미어 작
가로 15인치, 세로 18인치에 불과한 소품, 그러나 완벽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그림,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미어(Johannes Vermeer)의 그림이다.
모든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고요함과 절제 속에 골똘히 편지를 읽고 있는 여인의 옆모습은 그림의 구심점임과 동시에 시선을 빨아들이는 블랙 홀이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상상과 믿음에 맡길 수밖에 없었던 한 사람이, 쓴 사람의 흔적을 지니고 도착한 그 종이에 온 존재를 바치고 있는 그 무심한 순간을 베르미어는 이 작은 그림 속에 포착했다.
물감을 덧입히고 또 덧입혀서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화면 속에서 청색과 황색은 색깔로서의 역할을 멈추고, 빛과 어두움으로 재배치되어 있다. 알 수 없는 방향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 충만한 빛은 조용한 실내를 스며들 듯 비추며 투명한 초월의 세계를 암시한다.
평생 빚과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하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 그러나 색채의 세계를 뛰어넘어 빛의 세계로 진입한 그의 예술행로, 일상의 잡다한 소음과 이미지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하는 창조적 순간, 하지만 그 와중에서 결코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겸허하고 따뜻한 시선, 그 모든 것을 말해주는 정직한 이 그림은 나로 하여금 그 앞에서 무릎꿇고 싶게 한다.
모든 잘못과 위선을 뉘우치고 깨끗이 흐느끼고 싶게 한다.
김효신
이 그림을 1991년 4월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다. 릭스 박물관 한쪽 구석의 흰 벽에 고적하게 걸려 있던 보석 같은 그림. 그 날 미술관의 선물가게에서 그림카드를 사서 소박한 나무액자에 넣었다. 십 수년이 흘러 그 때의 여행은 희미한 기억이 되어 버렸지만, 베르미어의 이 그림만은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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