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서울에서 운치 있는 연말을 보내겠다고 들떠있던 사람들이 요즘 대단히 화가 나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가 발이 묶인 때문이다. 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 없어 운항이 줄줄이 취소되는데, 여행객이 급증하는 연말에 다른 항공사 티켓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대한항공 예약 승객들이 화가 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모처럼의 고국 방문 계획이 차질을 빚은 것, 둘째는 조종사들의 파업 이유이다. 조종사들이 연말 성수기를 맞아 회사측과 힘 겨루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돈’이다. 회사측은 기본급과 비행수당 등 임금을 3% 올리겠다고 하는데 노조 측은 6.5%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들 조종사가 보통 고액 연봉자들이 아니다. 기장, 부기장의 평균 연봉은 1억2,000만원, 8,800만원으로 어림잡아 10만달러 수준이다. 한국, 미국 어느 기준으로 봐도 고소득이다. “그만큼 받으면 됐지 얼마나 더 받겠다고 이 많은 사람들의 발을 묶어놓나”- 승객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연봉 10만달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임금 수준이다. 그만큼 벌면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정작 그 임금을 받는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것이 돈이다.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는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나 연예인들도 연봉과 관련,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과 비교해서 생기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대표적 저술가였던 H. L. 멘켄의 명언 “부자란 자기 동서보다 1년에 100달러 더 버는 사람이다”는 말은 요즘 수준으로 숫자만 조정하면 여전히 진리이다.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능력 있고 재력 있다고 알려진 인사와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한 재력이면 어디 가도 돈으로 꿀릴 일은 없겠다 싶은 데 그에게도 여전히 비교할 대상들은 있었다. 재력으로 한 단계 더 높은 부자들이다.
“부자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그룹이 있어요. 그들은 보통 제트기를 전세 내서 골프 여행을 다니지요. 한번 여행에 수만 달러 쓰는 것은 보통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온 가족이 1년 먹고사는 액수를 한번 여행에서 써버리는 그들은 그 만큼 행복할까.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 주제가 되어왔다.
이제까지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행복하다. 당장 그 달의 렌트비 걱정을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재정 상태에서 ‘행복하다’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구를 연소득별로 5등분했을 때 소득 최상위 그룹은 최하위 그룹에 비해 ‘아주 행복하다’며 삶에 만족하는 비율이 50% 높은 것으로 나와있다. 돈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행복을 살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소득과 행복감이 항상 정비례하지는 않는 것이 돈의 한계이다. 의식주의 걱정이 없을 정도로 소득이 안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소득이 늘어도 그로 인한 만족감, 혹은 행복감은 별로 높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어 큰집으로 이사를 가도 처음 내 집 마련했을 때의 기쁨만 하지는 못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지난 50년 간 미국의 가구 당 소득은 엄청나게 상승했지만 그렇다고 국민들의 행복감이 같이 늘었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행복하다’는 인구 비율은 30% 정도로 변하지 않고 있다. 돈으로 인한 행복감은 액수가 아니라 비교로 얻어지기 때문이다.
돈은 얼마나 버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행복과 직결된다고 본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등바등하며 돈에 벌벌 떠는 사람이 있고, 별로 많이 갖지 않아도 남들과 편안하게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가진 사람보다는 많이 나누는 사람이 부자이다. 그들이야말로 돈으로 행복을 사는 지혜를 터득한 사람들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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