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국가 게걸음에 곳곳 지뢰밭
새해의 결심의 결실에 대한 평가는 결심 당사자의 각오를 글자 그대로 되짚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민주화 확산을 자신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었다. 과연 그의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궁금하다.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자유가 승리를 이끌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부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안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호에서 이를 진단하고 평가했다. 부시는 지난해 1월 연두교서에서 자신의 2기 국정운영의 기틀을 ‘민주주의 확산’과’지구촌에서의 법의 지배’로 설정했다. 부시는 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결과, 미국의 자유보전이 다른 나라들에서의 자유보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지구촌 평화를 위한 최상의 요법은 자유 확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 대통령 선거 복수후보 출마 불구
관제정당·야당후보 탄압 등 독재관행 여전
팔레스타인 민주선거 ‘테러그룹’ 하마스 득세
사우디 민권 찔끔 개선, 아직 독재국가 수준
이라크 시아파 정권 이란과의 오랜 연계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본격 동참 기대 힘들 듯
부시는 최근 백악관 앞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05년은 보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고 보다 부강한 미국을 건설하는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이라크에서 실시된 민주선거를 자유의 역사에서 놀랄만한 순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잠시 미국 내에서의 민권문제는 제쳐두자. 부시 행정부가 법원의 승인 없이 일반 시민의 전화통화를 도청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2005년 1년 동안 세계의 자유가 신장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부시 행정부가 지구촌 자유 확산의 가장 확실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은 이집트의 선거이다. 이집트 대통령선거에서 여러 후보가 출마한 점을 들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중동지역에 민주화 바람이 불 것이라는 부시의 전망이 맞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집트 대선을 뜯어보면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여러 후보가 출마했다지만 정부가 후견인으로 있는 관제정당들이 있고 순수야당에 대해서는 발목을 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진정한 민주선거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야당 후보는 부시 대통령이 2005년은 ‘자유의 해’로 자랑한 뒤 이틀만에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백악관은 이집트 야당 지도자의 투옥에 우려를 표명했고 부시는 미국은 영향력을 행사해 민주화와 자유가 전파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했지만 성과를 단언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미국은 2006년 한해 동안 이집트에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 20억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다. 돈으로 이집트 민주화가 성사될지 두고 볼 일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보자. 2005년은 민주화가 이 지역에 번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 때문이라기보다 아라파트의 사망에 기인한다. 대통령 자유선거가 있었다.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테러그룹인 하마스가 아라파트의 파다당을 눌렀다.
올해 있을 총선에서 하마스가 득세할 공산이 커졌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 테러를 교육하고 이스라엘의 제거를 강조하는 그룹이다. 또 자살테러도 마다 않는다. 부시의 민주화 확산 기대가 현실로 다가올지 중요한 시험대이다. 과연 민주주의가 테러를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부시의 주장과 달리 다른 지역에서도 민주화로의 움직임은 느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민권을 약간 개선했다. 북한, 시리아, 쿠바보다는 낫게 평가되고 있지만 그래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유를 정치적 자유와 시민의 자유라는 잣대로 측량하면 벨라루스, 짐바브웨의 독재정권과 비등하게 나온다.
물론 이라크의 총선은 부시의 민주화 플랜에 들어맞는 성과물처럼 보인다. 이라크 민주화에 중요한 수니파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선거에서 소수계로 남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치체제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폭력의 악순환이 꼬리를 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쿠르드족과 시아파가 권력을 좌지우지한다는 데 대한 수니파의 거부감을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 가는 가가 최대 관건이다.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가 과연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동참할 지도 불투명하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이 바로 옆에 붙어있어 그 영향력을 도외시할 수 없는 처지다. 이란은 반미에 목청을 높이고 있고 이라크의 시아파는 오랜 세월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터라 그러하다. 이라크 정부가 반미 깃발을 들 가능성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민주화 확산에 대한 부시의 비전을 실현하는 길은 민주화 확산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될 도전을 극복하는 데 달려 있다. 느리건 빠르건 민주주의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정말 필요한 ‘실탄’이란 점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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