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서너 살 된 사내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아빠로 보이는 남성과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빠가 공을 던지면 아이는 달려가 공을 잡는 데, 아이의 머리통 만한 공과 그 뒤를 쫓는 나지막한 키의 아이는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통통 튀는 공과 그 뒤에서 통통 튀는 아이, 대굴대굴 구르는 공과 그 뒤에서 대굴대굴 구르는 아이.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는 허공으로 공 튀듯 튀어 오르고, 아마도 아이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저렇게 깔깔거리고, 저렇게 통통 튀며 비오듯 땀을 흘려본 것이 언제였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아득해서 떠오르지 않았다.
새해가 되자 연중행사처럼 ‘건강’이 또 다시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TV·신문마다 건강 전문가들을 초청해 더 젊게, 더 건강하게 사는 비결들을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다.
지난주 오프라 윈프리 쇼는 ‘팽팽하고 건강한 피부’를 주제로 삼았다. 피부미용 전문의들이 나와서 보톡스나 성형수술 없이 주름을 제거하는 최첨단기술을 선보였고, 식품건강 분야 전문의사는 피부를 젊게 만드는 식품과 늙게 만드는 식품들을 소개했다. 방청석의 여성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경청했다.
“어떻게 하면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까”는 중년이후 연령층이면 누구나 떨쳐버릴 수 없는 족쇄 같은 이슈이다.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 데 그 긴 세월을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꼬부랑 할머니’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물정 모르고 여전히 청춘인 ‘마음’과 에누리없이 재깍재깍 늙어 가는 ‘몸’ 사이의 괴리를 뛰어넘는 일이 큰 숙제인데, 방법은 ‘몸을 속이는 것’이라는 충고가 있다. ‘내년에는 더 젊게: 80살 너머까지 50살처럼 사는 법’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쓴 헨리 라지라는 내과의사는 우리가 몸에 어떤 시그널을 주느냐에 따라 노화를 앞당기기도 하고 늦추기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몸은 보통 50살을 고비로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데 이때 계속 오르막길인 척 시그널을 주면 세포와 뇌가 깜빡 속아서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말하는 시그널은 바로 운동이다.
50대에 매주 6일씩 열심히 땀 흘리며 운동을 하면 몸은 자기가 여전히 30대 혹은 40대쯤으로 착각을 해서 부지런히 세포를 새로 만들어내며 늙기를 멈춘다는 것이다. 반대로 도무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은 죽을 때가 다 된 줄 알고 지레 늙는다는 말이 된다.
몸에게 나이를 ‘속이는’ 시그널이 운동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몸을 속이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웃을 일도, 울 일도 없는 무덤덤한 삶이야말로 우리를 늙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대표적인 것은 웃음이다. 어린아이들은 하루 평균 300-400번을 웃지만 어른들은 보통 15번 정도를 웃는다고 한다.
웃음이 혈압을 낮추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면역력을 높여주는 등 건강의 보약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한번 웃으면 5분 동안 에어로빅 운동을 한 효과가 있다는 데도 그 쉬운 걸 잘 못하고 있다.
웃음 못지 않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울음이다. 웃음처럼 울음도 건강의 보약이기는 마찬가지. 한바탕 울고 나면 스트레스로 체내에 쌓였던 유독성 물질들이 눈물에 섞여 배출되고, 뇌와 근육에 산소가 공급되며 위장이나 심장 운동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슬픈 비디오라도 빌려보며 가끔씩 펑펑 울 필요가 있다.
운동장의 사내아이처럼 깔깔 웃고, 땀 뻘뻘 흘리며 운동하고, 때로 펑펑 울며 올 한해를 보낸다면 내년 이맘때는 더 젊어져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그 증인들이 되었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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