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제도가 확립되어 있는 미국의 정치는 참으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시피 공화당은 친기업정당이다. 기업에 대한 감세 등 친기
업정책을 위주로 하며 미국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다 보니 자연히 대외정책도 강경노선을 취하게
된다. 반대로 민주당은 서민정당으로 인식되어 있다. 대기업보다는 근로 서민들에게 유리한 정
책에 역점을 둔다. 대외정책에서도 공화당보다는 유연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공화당
은 보수정당, 민주당은 진보정당이라는 인식을 준다.
미국과 더불어 정치선진국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는 영국에도 비슷한 양당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보수당은 친기업적이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취하는 반면 노동당은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대외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보수당은 19세기의 귀족정당인 토리당의 후신이므로 그 정책과 지지 기반이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한편 노동당은 1세기 전 노동자 계층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기 위해 결성된 정당이므로 일반근로대중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당과 노동당, 즉 영미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각각 다른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매우 타당한 이유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 사상의 근간은 자유와 평등인데 자유를 강조하다보면 보수주의가 되고 평등에 기울어지다 보면 진보주의가 된다. 또 경제생활을 이끌어
가는 두 개의 바퀴는 성장과 분배인데 성장을 위주로 하면 보수주의가 되고 분배에 기울어지면 진보주의가 된다. 영미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은 각각 자유와 성장, 평등과 분배의 편에 서 있으므로 지지기반을 달리하게 되었다.그러나 영미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은 그 성향이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훼손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국익을 추구하고 있는 점이다. 또 보수정당이라고 해서 진보 진영을 무시하지 못하고 진보정당이라고 해서 보수 진영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는 것이 개개인에게는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국가 전체로 볼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의 생활이나 국가의 방향 설정에는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가 모두 필요한 요소이므로 오히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수시로 교체됨으로써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극단적인 보수 또는 진보주의가 판을 치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역사에서 이 두가지 경우를 경험했다. 보수주의, 즉 우익 일변도의 예는 나치즘과 파시즘이고 진보주의, 즉 좌익 일변도의 예는 커뮤니즘에서 볼 수 있다. 극우와 극좌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쳤기 때문에 반대편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독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 중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고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도 성공할 수 없다. 극우와 극좌는 결코 민주주의가 될 수 없으며 종국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북한의 극좌체제, 남한의 극우체제가 대립해 왔다. 극우와 극좌는 필연적으로 독재체제를 이룰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남북이 모두 독재정치를 겪었다. 북한은 아직도 좌익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남한에서는 우익 독재가 무너진 후 급격한 좌경화가 진행되고 있
다. 그러나 급격한 좌경화로 결국 극좌체제가 들어설 경우 권력은 또다시 독재화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극좌독재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극우시대의 청산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사태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이다. 이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얼마 전 나타난 것이 「뉴라이트」 운동이다. 과거처럼 진보 성향을 모두 거부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진보를 수용하는 보수주의를 지향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뉴라이트에 대항하여 「뉴레프트」 운동이 태동했다.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진보주의를 추구해 나간다는 취지의 운동이다. 이 두 운동은 정치권 밖에서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국민적 공감이 확산되면 정치세력으로 크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와 진보가 대변하는 자유와 평등, 경제의 성장과 분배는 개인이나 국가에 모두 필요한 요소이다. 어느 것이 다른 것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고 대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 사람이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어야 바로 설 수 있고 두 눈이 있어야 바로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극우와 극좌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 시작된 뉴라이트와 뉴레프트가 선진국형 양대 정당의 줄기를 형성할 때 한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안정적, 점진적, 계속적인 사회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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