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선생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피닉스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 막 오르기 전이다.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할수록 백선생과의 인연의 기억이 더욱 또렷해진다.
1994년 선생님과 커네티컷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2인전 준비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당시 독일 뒤셀도르프에 계셨던 선생은 휘트니 미술관으로 팩스를 보내 주셨다. 단 두 줄의 문장이 담긴 간단한 내용이었다. ‘나는 괜찮다. 강익중이 좋은 자리를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작년 말 백선생의 후원자이자 오랜 친구인 칼 솔웨이를 신시네티에서 만났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솔웨이의 부인은 선생 얘기가 나오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주변 사람들이 편찮으신 선생을 너무 소흘히 대하는게 아니냐고 분개하자 솔웨이는 그렇지 않다며 부인을 다독거린다. 선생의 여행 가방에는 내의 몇장과 책이 가득한 정말 욕심없는 천재였다고 솔웨이 부부는 말한다.
비빔밥도 만드는 사람의 형편과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진다. 밥 한 그릇에 잘 익은 고추장만 있으면 어느 것과 어우러져도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우리 미술이 지니고 있는 힘이 바로 이 백남준 선생이 말씀하신 ‘유연성’ 이다. 그 유연성이 바로 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한국 작가 백남준을 만든 것이다.
아이와 같이 씩 웃으시는 맑은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낮에도 별을 보는 분이구나라고 그냥 혼자 생각했다.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이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이 전람회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남기신 생각과 흔적들은 이제 스스로가 별이 되어 세계 미술사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그분이 어린 나에게 주신, 깊은 선생의 사랑은 앞으로 내내 잊지 못할 것이다.
강익중 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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