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선생이 좀 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퍽 애석한 일이다. 미망인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기에 유서조차 작성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작품 중의 하나로 ‘엄마’라는 타이틀의 작품을 하셨다는데 그 ‘엄마’는 무엇을 상징하는 작품이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계속 맴돌고 있다. 애절하게 외쳐대는 그 “엄마…”는 누구일까? 고향일 수도 있고,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우주일 수도 있고 정말 육체적으로 나를 낳아준 어머니일 수도 있고 나를 평생 옆에서 돌보아준 누군가일 수도 있고 선생이 추구하는 작품세계일 수도 있다.
먼 옛날 떠나온 어릴 적 동네, 고향이 그 분의 엄마일까? 세상에서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면 선생의 고향은 한국이다. 자란 곳이 고향이라면 그에게 한국이 고향이다. 그런데 그 분이 대학시절부터 작고할 때까지의 체류지는 한국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를 놓고 고향을 논한다면 더욱 한국이 고향이 아니다. 일본에서 대학교육을 받았고 비디오 예술의 시작과 발전은 독일에서, 그리고 활발한 작품 활동은 주로 미국에서 하였다.
미술계가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한인들과는 별다른 접촉 없이 지냈다.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까지 오랜 동안 한인사회와 한국으로부터 잊혀진 작가였다.
경기도에 진행 중인 백남준 박물관의 청사진 한쪽에 ‘백남준이 오래 살 집’이라고 손수 쓰셨다던가. 또 스미소니안과 경기문화재단 어느 쪽에 작품 일부를 소장하도록 할까 하는 문제를 놓고 스미소니안이 소장하게 된다면 더 유명가치가 올라가겠지만 한국 쪽에 손을 들었다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분명히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아왔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세상을 끝내는 날 찾아가고 싶은 고향이 한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고향은 한국만이 아니고 세계의 곳곳이 될 수도 있다. 선생님이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을 고향으로 알고 계속 안주할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서는 한국인 미술인들이 그가 시도한 무궁무진한 미술세계를 더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본다.
장례식에서 세계 미술계의 거물들이 조사를 할 때마다 하나같이 선생을 한국인 작가, 더 나아가 세계적인 작가라고 칭할 때 내가 느끼는 그 자랑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자랑스러운 느낌을 온 한국인들이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앞으로도 또 다른 한인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로 탄생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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