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성공을 해서 얻는 보너스중의 하나는 남들의 우호적 시각이다. 모든 사건·사물·사람은 보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180도 달라질 수 있는데, 평소 냉랭하고 부정적이던 시각이 성공의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반전하는 것을 자주 본다.
수퍼보울 스타 하인스 워드에게 쏟아지는 한국 언론의 호들갑스런 보도가 좋은 예이다. 그의 코리안 핏줄을 갑자기 친밀하게 여기는 이곳 한인들의 애정 어린 관심도 비슷하다.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 싶은 국제결혼 가족들을 차갑게 밀쳐낼 때는 무관심과 편견의 근거처럼 보이던 혼혈의 얼굴이 갑자기 위로하고 격려해야할 대상으로 보이는 시각의 변화 혹은 변덕이다.
그런 맥락에서 하인스의 성공을 지켜보는 국제결혼 가족들의 심정은 각별하다. 남의 일, 남의 아들 일이 아니다. 미국내 국제결혼 여성들의 모임을 이끄는 실비아 패튼 한미여성회 총연합회 회장은 “하인스가 MVP로 뽑혔다는 소식을 듣는데 목구멍이 아파 오더라”고 했다.
흑인 혼혈의 외모로 그가 겪었을 차별, 그런 아들을 억척스럽게 길러낸 어머니의 고생이 안 봐도 훤하게 찌르르 가슴에 전해 오기 때문이었다.
‘국제결혼’으로 분류되는 이민1세 여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국에서 미군병사와 결혼해 이민 온, 대개 불우한 환경의 저학력 여성들, 그리고 미국에 유학 와서 미국인 남편을 만난 최고학력의 여성들이다. 그래서 성장 배경, 교육 정도, 사회적 신분, 직업은 제 각각이지만 ‘국제결혼’했다는 사실 하나로 끈끈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살면서 울고 웃는 근본적 경험이 같기 때문이다.
미시건에서 임상심리학자로 일하는 숙 윌킨슨 박사, 혹은 박혜숙씨는 국제결혼 여성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요소로 미국적응의 호됨과 한인들의 차별을 들었다.
“보통 한인들은 미국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만 들어오면 긴장을 풀 수가 있지요. 한국말 쓰고, 한국 음식 먹으며 한국식으로 생활할 수가 있으니까요. 국제결혼 여성들은 미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모든 게 미국식이에요. 집안에서부터 음식이며 언어, 문화가 다 달라지니 적응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지요”
그래서 ‘친정집’의 푸근함을 찾는 심정으로 한인사회를 찾지만 이들이 가장 쓰린 상처를 받는 곳이 바로 한인사회이다. 이런 아픔들이다.
“한국 식품점에 가더라도 혼자 가면 별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거나 남편과 같이 가면 꼭 마음이 상하지요. 싸늘하게 외면하는 사람부터 고개를 돌려 두 번, 세 번 훑어보는 사람, 불쾌한 표정으로 쑤군대는 사람…” “교회에서 받는 상처도 커요. 있는 힘, 없는 힘 다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 봉사를 해도, 교회 임원이나 장로·권사 뽑을 때면 고려 대상에서부터 제외가 되는 거예요”“제일 아픈 건 부모형제에게서 받는 배신감이지요. 가족들을 이민초청 해서 먹고 살만하게 돕고 나면 딸·누이가 국제결혼한 게 수치스럽다고 쉬쉬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미국에 사는 한인 인구의 70%는 국제결혼한 여성이 초청한 이민이라는 통계가 있다. 유학이나 취업 이민은 30%에 불과하다고 한다. 통계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수 없지만 국제결혼 여성들이 미국 이민의 주된 교량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이민 1세로서 미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잇는 역할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것이 또 국제결혼 여성들이다. 정계나 학계, 문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1세 여성들을 보면 많은 수가 국제결혼 여성들이다.
집집마다 타인종 사위·며느리를 맞는 것이 이민자로서 우리의 현실이다. 국제결혼을 ‘주홍글씨’로 단죄해온 50여년의 구습은 버릴 때가 되었다. 벽을 왜 허물지 못하는가. 국제결혼 가족들, 입양인들 등 모두가 한인사회의 자산이다. 다 함께 포용해서 더 큰 커뮤니티로 만들면 그만큼 우리의 힘은 커질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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