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테너 마리오 란자의 딸 N(왼쪽)과 나.
음악동호인들간에는 오페라 매니아로 잘 알려진 이주헌씨의 오페라 체험기 ‘오페라, 행복한 중독’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씨는 음악동호인 모임 보헤미안의 회장을 맡고 있다.
오페라 매니아는 바람둥이?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람둥이라고 한다. 하나에 몰두하지 않고 곁눈질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잡기를 좋아하는 기질과 통한다. 오페라는 음악, 연기, 미술, 의상, 조명, 연극, 문학, 역사, 연출을 알아야 할 필요는 있지만 즐길 줄 알면 그만이다.
오페라를 통해 만난 이들 가운데 친분을 두텁게 쌓은 E와 N은 강한 인간성의 소유자로 내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인 B는 유대인 변호사인데도 바그너광이다. 한번 친분을 맺고 나니, 법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 시간씩 전화로 조언하는 통에 내가 먼저 대화 주제를 바꿔야 했다.
특히 N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성악, 피아노, 지휘 세 방면에서 천재에 가깝다. 17세에 이미 파바로티와 연주했지만, 개성이 너무 강한 탓에 조직이나 단체에서 항상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그는 지역 단체의 오페라 연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자기 나름대로 음악회를 기획 실행하는 끈기와 배짱을 지닌 사람이다.
한번은 N이 오페라 ‘투란도트’를 패사디나 무대에 올렸다. 나도 그의 계획에 동참했다. 투란도트역에 소프라노 게나 디미트로바를 초청했고, 200여명의 합창단은 LA에서 보기 드문 연주였다. 물론 흥행은 실패였다. 객석을 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6개월 후 적자를 만회하고자 알렉스 극장에서 테너 제리 하들리 독창회를 개최했다. 당시 그는 쓰리 테너 다음으로 인기를 누리던 미남의 성악가였다. 결과는 또 참패였다. 두 연주회가 내게 남긴 수확이란 디미트로바와 마리오 란자의 딸 N과의 친분뿐이었지만, 그 후 그들의 연주회에 늘 초대되어 오페라 여행을 많이 하게 된 것은 정말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매월 열리는 바그너 소사이어티의 모임은 정말 기다려지는 만남이다. 이 곳은 독특한 영혼들이 모여든다. 사랑과 음모, 질투와 보복, 살인, 패륜이란 근본적 감성을 넘어 숭고한 사랑, 고결한 영웅을 숭배하는 이상주의자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바그너의 추종자가 되어 열성을 다하지만 말러의 교향곡과 스트라우스로 곁눈질도 한다. 가끔 ‘오랜 연인’ 칼라스를 떠나서 키리 테 카나와, 제시 노먼, 자넷 베이커를 찾고, 젊은 시절 좋아했던 모나코와 코렐리를 떠나 유시비욜린, 카를로 베르곤지를 들을 때도 많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람둥이라는 말은 수긍이 간다. 오페라가 주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즐기려면 바람둥이 기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400편이나 되는 오페라 가운데 현재까지 연주되는 오페라는 500편도 채 되지 않고,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오페라는 일생을 통해 100편도 어렵다. 새로운 감격을 맛보는 기쁨은 잡기를 좋아하는 풍요로움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주헌/보헤미안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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