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통치시절 볼리비아의 라파스에서 남미 인디언 아이마라족이 잉카제국의 재건설을 외치며 반란을 일으켰다. ‘투팩 카타리’가 이끄는 반란군 4,000명은 라파스를 점령(1781년)하고 꿈에 그리던 ‘인디언에 의한, 인디언을 위한’ 통치를 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자 스페인군의 반격으로 아이마라 인디언은 라파스를 다시 빼앗겼으며 지도자인 ‘투팩 카타리’는 부하의 배반으로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스페인군은 인디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어떤 처벌을 받는가를 시범 보이기 위해 ‘투팩’의 팔과 다리를 네 마리의 말에게 따로따로 묶은 다음 채찍질하여 사방으로 뛰게 했다. 사지가 찢어지는 참혹한 형벌이었다. ‘투팩’은 죽기 전 사형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지금 죽지만 먼 후일 수천, 수만명의 투팩이 다시 살아서 라파스로 돌아오리라”. 그 후부터 ‘투팩’이라는 단어는 반항아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남미 게릴라 단체의 이름 대부분이 ‘투팩’ 운운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팩 카타리’의 절규는 225년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격렬한 인디언들의 항쟁 끝에 마침내 볼리비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디오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더구나 새로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바로 투팩과 같은 부족인 아이마라족 출신이다. 그는 지난달 라파스에서 거행된 취임식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고 인디언들의 손으로 짠 알파카 재킷을 입었다.
미국은 지금 이 모랄레스의 등장에 골치를 앓고 있다. 그가 좌파정권인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와 손잡고 반미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랄레스는 선거기간에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에 악몽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공언 해왔으며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그를 ‘미국의 악몽’이라고 부르는데 주저치 않는다. 볼리비아에서는 벌써 수도공사 사업을 독점해온 미국 벡텔회사가 쫓겨났다.
모랄레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의 공평한 분배’다. 자원이 많은 나라에서 인디언들이 너무 못사는 것은 지배계층(백인과 혼혈인 메스티조)의 오랜 착취 때문이며 이와 같은 지배계급을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착취자들의 것을 다시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것이 그의 통치이념이다. 그 본보기로 우선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아온 고급 공무원의 봉급을 50% 국가에 반납키로 하고 자신의 연봉부터 반을 줄였다.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볼리비아 대통령의 연봉은 2,460파운드(5,000달러)에 불과하다.
모랄레스는 데모대를 이끌고 두 차례나 정부 전복을 성공시킨 노조위원장 출신 대통령이며 취임식에서 체 게바라를 위한 묵념을 드렸을 정도로 그의 혁명이념을 숭상하고 있다. 체 게바라의 이념이란 쉽게 말해 의적 로빈후드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부의 평준화 작업이다. 더구나 모랄레스는 빈민들의 수입 향상을 위해 마약으로 쓰이는 코카의 재배를 합법화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쿠바의 카스트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긴밀하게 협조할 것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뒷마당인 남미에서 반미와 사회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만약 남미에서 미국의 이익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면 대기업을 두둔하는 부시 정권으로서는 가만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남미의 반미 선봉에 서있는 지도자는 누구인가. 카스트로인가.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다. 그가 바로 폭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사
c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