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포에버’에서 칼라스역으로 분한 프랑스 여배우 파니 아르당.
칼라스 포에버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는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다.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의 이 영화는 은퇴 후 실의에 빠져 은둔생활을 하는 칼라스(파니 아르당 분)를 비추며 시작한다. 화려한 무대생활은 끝나고 한 남자와의 사랑에도 실패해 죽음으로 마감하는 그녀의 비극적 삶을 보여준다.
마리아 칼라스는 같은 시대 쌍벽을 이뤘던 레나타 테발디(1922~2002)에 비하면 53세라는 나이에 너무나 짧은 일생을 마쳤다. 1977년 9월16일 그녀의 사망소식은 전 세계에 큰 충격으로 전해졌다.
오페라와의 인연을 돌이켜볼 때 가장 빛나는 존재가 마리아 칼라스이다. 학창시절 그녀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마리오 델 모나코나 프랑코 코렐리 등 당대의 유명한 테너가수와 부르는 연주는 나를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만인의 연인’ 칼라스를 처음 만난 것은 1974년 늦가을 김포공항에서다. 디 스테파노를 대동하고 한국 공연을 위해 공항에 들어섰고, 큰 키에 부리부리한 눈, 검정 바바리코트 차림의 그녀는 무대 밖에서도 모든 군중을 제압했다.
다음날 시민회관 공연. 그녀가 부른 토스카의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육성으로 듣는 감격이었다. 무대 뒤에서 나눈 10분간의 대화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내게 “더 큰 곳에서는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칼라스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노력파이면서 예견할 수 있는 지적능력을 갖추었다고 한다. 일례로 1952년 라 스칼라의 ‘노르마’ 공연 사진을 보면 그녀는 큰 코와 눈, 육중한 몸의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러나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의 가냘픈 몸매에 매료되어 자신의 몸매를 가꾸기 시작해 1956년 라 스칼라의 ‘노르마’에서는 무대의 백조로 변신했다.
칼라스가 죽은지 30년도 넘은 2005년 10월, 오페라 뉴스는 ‘칼라스 전설’이라는 부제를 달아 그녀를 재조명했다. 카를로 베르곤치는 “그녀는 가사와 단어의 의미를 공부했기에 디바가 된 것이다. 그녀는 천 개의 다른 얼굴과 표정을 가졌고 연기와 노래로 천 개의 역할을 해냈다”고 했다. 아프릴 밀로는 “칼라스를 듣는 것은 마치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또, 안나 모포는 칼라스가 ‘안녕’(Addio)이라는 이탈리아어의 발음이 마음에 들지 않아 24번을 반복 연습했다고 회상했다.
‘오직 하나뿐인 나의 디바’ 칼라스가 사망한 지 22년이 흐른 어느 여름날, 그녀가 살던 파리의 아파트 앞을 서성거리며 그녀의 위대함을 회상해보았다. 칼라스는 ‘노르마’라는 오페라 세계에서 사랑 때문에 불에 뛰어들어 죽지만 실존세계에서는 사랑 때문에 약물에 중독되어 죽었다. “칼라스 포에버-.”
이주헌/보헤미안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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