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제국주의’란 침략에 의하여 영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팽창주의 또는 식민주의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문화산업인 영화, 게임 등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문화산업 제국주의 노력이 막강한 할리웃 산업체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현대의 필수적인 미디어인 TV나 라디오 등을 보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국가에 제국주의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단기간에 걸친 전쟁이나 협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거의 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진행되어 온 것이며 한번의 독립전쟁으로 해방될 수 없는 고도의 인프라에 의해 고안되어 온 것이다. 왜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침탈 당해 온 많은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문화 독립전쟁을 해 오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문화 제국주의라는 것이 정치 또는 군사적 힘에 의한 제국주의와는 달리 부정적인 요소보다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는 긍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미하긴 하지만 미국 문화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WTO와 GATS 등 주로 경제와 무역을 협상하는 테이블에서 논의되긴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고 제대로 논의된 것은 2001년 제31차 파리총회에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을 채택하면서였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은 생명에서 종(種)의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생태계가 균형 잡힌 발전을 할 수 있듯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한 문화집단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이 그 자체로 인정되고 보존되어야 인류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제기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한참 논쟁 중인 ‘스크린쿼터’도 이러한 문화다양성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영국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에선 1966년에 처음 실시되었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은 그 논리의 주된 근거를 ‘유네스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으로 삼고 있으며, 반대 입장에 선 한국 정부는 ‘자유무역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즉, 어떤 ‘한 국가의 문화를 단순히 경제적인 무역 상품으로만 취급할 수 있는가’에 그 논쟁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는 여러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할리웃 영화 ‘스타워즈 3’는 폭스사를 통하여 배급되어 전세계 127개국에서 같은 날짜에 개봉했다. 미국 메이저사가 직접 만드는 영화는 ‘무위험-고수익’이라고 한다. 전세계 배급망을 통하여 단 1주일만 개봉하여도 웬만한 영화의 제작비는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제대로 맞서고 있는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인도가 독특한 민족문화로 자국 영화 점유율을 90% 이상 유지하고 있고, 중국이 연간 20여편의 엄격한 수입규제 장치로 자국의 영화를 잘 보호하고 있다.
이 두 나라를 제외하고 자국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다. 한국은 20세기까지만 해도 미국 영화가 전체 시장의 70~80%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 할리웃에 상당히 침략 당했었다. 그러나 2001년 처음으로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1%로 올랐고 올 2월에는 70%에 달했다. 이같은 급성장은 ‘미국 문화 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이제 제국주의 속국이 아닌 문화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영화산업을 견인해 온 스크린 쿼타가 축소되어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가 쌓아온 눈부신 업적과 잠재력이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 문화 주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신항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미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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