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하다. 지난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구와 통화를 하고 40여 년 전 깊숙이 묻혀있는 추억을 끄집어내려 애썼다.
꿈은 아니겠지. 오전 열시 전화가 울린다. “음, 나 이제 출발해. 곧 만나자.” 한 시간쯤 걸린다니 자꾸 시계를 본다. 밖을 내다보니 차가 한대 집 앞에 선다. 친구다. 계단을 뛰다시피 내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친구가 예쁜 꽃 화분을 들고 온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친구는 날 보니 비로소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는 얘기를 한다. 친구의 차에 올라 친구 집으로 가는 중에 계속 친구의 전화벨이 울린다. 친구의 지인들이 만났는지 궁금하여 하는 전화다. “응, 만났어. 지금 우리 집으로 친구를 데리고 가는 길이야.” 친구의 목소리가 기쁨과 흥분으로 날아갈듯 가볍다.
큰오빠가 나를 보러 일부러 오신다고 했고 셋째 오빠는 이명박 시장님의 방미로 바쁜 중에도 틈틈이 전화를 해 오빠가 올 때까지 나를 꼭 잡아 놓으라고 하신다.
오후 6시가 되니 친구의 남편과 큰오빠가 오셨다. 오빠는 듬직한 체구로 나를 안아 주신다. “고맙구나.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 주고 잘 살아 줘서.” “저도 고마워요. 이렇게 저를 보러 힘든 운전을 마다 않고 와주셔서.”
셋째 오빠는 계속 전화를 하시다 9시쯤 도착하셨다. 역시 나를 안아 주시며 자신도 큰누나가 수도여고 나온걸 알고 워싱턴 수도여고 동문회에 여러 번 연락을 했다고 하신다. 아, 우리는 서로 잊지 않고 찾으려고 했었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막상 찾기는 하였으나 그냥 반갑다. 그랬구나, 뜨악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셋째 오빠가 우리집에서 살다시피 하셨다니 큰오빠가 “쟤네 집에서 살다시피 한 건 나야” 하시더니 “우리 식구 모두 쟤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구나” 하시는 말씀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시간이 늦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일어서야 했다. 차가 집을 빠져나갈 때 뒤를 돌아보니 식구 모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려고 한다. 만날 수 있어 감사하고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은 간만에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끝으로 한 개인의 친구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소홀히 하지 않고 기사로 실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하여준 한국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최정순/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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