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설목사(청암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어김없이 부활절이 다가온다.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은 예수의 선교 초기에 성전을 청결케 하신 후 이미 당신의 부활까지 예고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요한 2:19-22). 즉, 돈 바꾸고 제물을 사고파는 장사의 소굴이 된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일성을 가한 예수께서는 삼일 만에 다시 세우시겠다고 호언 장담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무려 46년이나 걸려서 지은 성전을 무슨 수로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냐 하는 바리새인들의 야유를 뒤로하고 예수께서는 그 자리를 뜨셨다. 제자들조차도 예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야 성전 된 예수의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음을 이해하였다고 요한은 주석을 달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허시고 다시 세움에 무슨 술수가 있으셨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수는 무슨 수가 있었겠는가? 예수께는 그 어떤 술수도 없으셨다. 술수는 세상에 속한 못된 자들의 점유물일 뿐 그 분께서는 그런 술수를 모르셨을 뿐더러 아예 술수가 통하지 않는 분이셨다. 술수로 말하자면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을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 그 분은 오로지 당신 자신을 내어 주는 일 외에는 달리 방도를 모르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방식은 너를 치는 길이 아니라, 나를 쳐서 던지는 길이셨다. 이것이 바로 그 분께서 지신 십자가인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술수에 대한 거룩한 부정이다. 무슨 수를 쓰던지 살아남겠다고 집착하는 한 우리는 술수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모양으로든지 일체의 술수가 부정되는 곳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우뚝 설 것이다.
나를 나 아닌 것으로 부정하는 곳에 그리고 나의 안전을 포기하고 자기 기득권을 던지는 자기부정의 자리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존재한다. 자기 부정은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간격을 두자는 것이며, 자기 경직화와 완고함을 거절하는 일인 동시에 자기 포기에로의 용기를 자기 속에 각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부정은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술수와 폭력을 일체 반입하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일단 자기를 부정하여 내어 놓은 데는 적어도 엄청난 패배와 좌절을 각오해야 한다. 자기부정의 방식은 적어도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실패의 종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악한 세상의 승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이것이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부정을 통하여 어두운 인간 역사의 현장에 부활이라는 역전의 사건을 만들어 내셨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역사 개입의 극점이다.
그런데 거룩한 부정으로서의 예수의 십자가는 타인을 살리는 힘이 있다. 자기를 부정하여 타자의 고난을 짊어지는 사랑의 십자가야말로 예수께서 보여주신 거룩한 부정의 길이다. 크리스챤이라면 어떤 힘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부정 속에서 자신의 온 힘을 고난당하는 자를 위한 무제약적인 투신에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간에의 사랑은 단순한 동정, 즉 배려적인 박애가 아니라, 도리어 자연과 사회의 고난을 유발하는 모든 술수에 대항하여 항거하는 거룩한 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소위 자기를 부정하는 일을 일종의 현존재의 짐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의 자기부정은 자기 버림 속에서 철저히 아버지와 타자를 붙잡고 있다. 즉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의 특성은 항상 철저히 자기로부터 이탈하여 하나님과 세계를 향해 아낌없는 사랑으로 자기를 증여하심에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부활절에는 우리 모두 자신의 거룩한 부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 개입하심을 함께 증거 할 수 있기를 소망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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