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월드뱅크에서 태권도 시범이 있었다. 한국인 사범을 필두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과 어린 여학생들도 섞여있는 시범팀이었는데, 상당한 수준급의 태권도 시범을 선보여 다국적 관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시범이 반정도 끝났을 무렵 태권도 시범단의 사범이 간단한 인사말을 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가 너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저를 태권도장에 보낼 돈이 없으셨죠. 그저 태권도장 창 밖에서 몰래 다른 학생들이 배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종일 태권도 수업 구경을 하다가 창문 앞에서 잠이 들었는데 직원들이 그것도 모르고 일과 후 건물 문을 잠궈 버렸죠. 저는 건물 안에 갇혔고 밤이 늦도록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셨습니다. 그 사건 후 제 정성에 감동한 사범님이 저를 가르쳐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외국어로 연설을 하자면 아주 수준급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주눅들기 마련이건만 역시 ‘태권도 한국인’다운 이 젊은 사범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가난한 과거 이야기, 그것을 이겨내고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낸 이야기는 다국적 관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인사말이 끝나고 후반부 시범이 시작될 무렵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가 예고 없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오늘 태권도 시범 정말 볼거리, 들을 거리가 많군요. 그리고 배울 거리 또한 많은 것 같습니다.”
좀처럼 직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총재의 갑작스런 연설에 사람들은 주목했다.
“세계은행은 개발도상국들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은행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모든 개발도상국들에게 전설과 같은 존재입니다. 6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지금은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인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모두들 아실 겁니다. 오늘 태권도 시범은 그런 의미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저 사범님이 매일 태권도 학원 앞에서 창문 너머로 구경했던 것처럼 매일 부지런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 사범님이 한국 챔피언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의 경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 가난과 싸우고 있는 그 어떤 나라도 저 사범님처럼,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매일 부지런히 열심히 일어난다면 경제 기적은 그들의 것입니다. 마치 저기 태권도 시범단에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도 모두 훌륭하게 격파 시범을 보여주었던 것 처럼요.”
나는 전율을 느꼈다. 사실 꼭 이 때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사례는 마치 고등학교에서 꼴찌에서 단숨에 1등으로 성적을 올려버린 어느 선배의 전설처럼 다뤄진다. 우리 윗세대들이 이룩한 업적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이 태권도 사범처럼 부지런한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이 지방의 모든 의대 치대 한의대 그리고 서울교대보다도 커트라인이 낮아졌다는 사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의대 내에서도 흉부외과나 신경외과는 지원자가 거의 전무하고 성형외과와 피부과로만 몰리는 경향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젊은 세대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보다 소득이 짭짤한 일을 찾고 있다.
미디어는 대놓고 ‘웰빙’을 사회의 화두로 만들었다. 한창 땀흘려 일해야할 젊은이들은 땀흘려 ‘웰빙’을 찾아 나선다. 우리 윗 세대들은 경제개발에 성공했지만 자식 교육은 실패했다. 30년 후에도 세계은행에서 한국이 여전히 전설적 존재로 남아있을지, 아니면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의 사례로 남을지 의문이다.
김영무
월드 뱅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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