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목사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둘러앉은 제자들에게 청청벽력과 같은 선언이었다. 첫째, 주님께서 비명에 돌아가시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둘째, 주님으로 하여금 그런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하는 장본인이 바로 자기들 중 어느 한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그의 인생의 최후의 밤에도 태연하게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잡수시면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나누어 먹이시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자기 사람들”중에 배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주님의 가슴을 점점이 도려내는 아픔이었던 것이다. 진실로 그날 이후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에 주님께서는 외부의 불신자들보다 내부의 자기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루었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교회의 죄악인가! 그래서 주님께서는 일찍이 “사람의 원수가 제 집안 식구이다”(마1:36)고 말씀하셨다.
갑작스런 주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은 열두 제자들은 차례대로 “그 배신자가 나는 아니지요?”라고 저마다 자신의 결백함을 천명해 보이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어이없는 정황이란 말인가! 그래 그 배신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고 해서 내 마음은 편하단 말
인가? 설령 내가 배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배신자가 분명 내가 소속된 열둘 중에 끼어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직접 배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면 이것은 또 한번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교계를 혼란케 만든 것은 자기네 교파가 아니며,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은 내 교회 사람이 아니라 하여 태연하고 안일하게 마치 남의 일 말하듯 하는 것을 볼 때 한심한 생각이 든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했는데, 오늘날 교계에 파렴치한 꼴뚜기
들이 많은 판국에 그것이 직접적인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서 나 혼자만 “성자”가 된다는 말인가? 비록 내가 장본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중에 가룟 유다가 끼여 있는 한 우리 모두가 공동책임을 지고서 다함께 부끄러움을 느끼며 참회를 해야 옳을 것이다.
더욱 한심하고 어이없는 일은 가룟 유다의 경우다. 다른 사람들이야 자신의 결백을 보장받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배신의 장본인인 가룟 유다는 대체 무슨 뱃장으로 “랍비여, 내니이까?”라고 말했을까? 이쯤 되고 보면 메가톤급의 철면피라 하겠다. 다들 자신의 결백을 다짐하는 터에
나 혼자만 침묵을 지키자니 동료들의 눈총이 따갑게 느껴지고, 변명을 하자니 그래도 서픈어치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꼈을 터이니 가룟 유다의 난처했던 입장을 어느 정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네가 말했느니라!”(It is you!)는 주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도 회개할 줄 몰랐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가련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부득불 말하지 않고는 아니 될 처지였다면 차라리 “내니이까?”라는 말 대신에 “주여, 이놈이 바로 배신자입니다!”라고 통회하였더라면 유다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아무리 시치미를 떼고 태연한 체하려 했어도 결국 창자까지 쏟아 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룟 유다처럼 “주여, 내니이까?”라는 말만을 되풀이할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이 그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시켰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전가를 시켰듯이 세상 사람들은 책임전가의 본능이 너무나 발달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의 고난 주간을 당하여 우리 모두 겸허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살피면서 새로운 인생 설계를 시도해 보자. “잘된 것은 내 탓이고, 잘못된 것은 조상 탓”으로 돌리는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일의 책임을 내가 먼저 지고 나서야만 주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주님의 부활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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