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쓰였던 이하원.
중국 북경에는 세계 문화유산들이 많다. 그중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린 제단인 천단과 명·청왕조 때의 궁궐 ‘자금성’,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유명한 이하원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고건축 등 풍부한 건축문화를 잘 보여주는 세계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이들 세 곳만 돌아봐도 중국 옛 왕조의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다.
◈천단(The Temple of Heaven)
명나라 때인 1406~1420년 건립된 천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중국 도성의 남쪽 교외에 자리하고 있다.
천단은 고대 중국인들의 우주에 대한 상상력과 자연계에 대한 과학적 추리들을 함축하고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믿은 고대 중국인들의 사상을 반영, 천단 안쪽 윗담은 원형이고 바깥쪽 아랫담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 푸른 하늘은 위에, 대지는 아래에 있음을 반영한다. 또한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인 음향오행설이 적용되어 하늘에 드리는 제사는 양수 중에서 가장 높은 9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천단에는 황제가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둥근 제단이 3단으로 쌓여 있는 원구단과 역대 황제들의 위패가 모셔진 황궁우, 매년 여름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기년전 등이 들어서 있다. 273 헥타르의 넓은 천단은 100살이 넘은 고목 등 6,000 여 그루의 측백나무들이 심어져 북경 시민들이 태극권 운동을 하며 쉬는 시민공원이기도 하다.원구단 꼭대기에 오르면 정 가운데 둥그런 돌이 놓여 있는데 황제가 제문을 태우던 받침돌이다.
원구단과 마주 보고 있는 둥근 청색 기와 건물 ‘황궁우’는 당시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사이에 끼어 둥근 지붕을 만든 뛰어난 건축물이다. 황궁우를 둘러싸고 있는 벽돌담은 한쪽 끝에서 말을 하면 반대쪽 끝까지 전해진다고 하여 회음벽이라 한다. 황궁우 중앙의 세 개의 받침돌 삼음석은 첫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메아리가 한번, 두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두 번, 세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세 번 들린다고 하는데 실제로 두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첫 번째 돌에서 치는 것 보다 박수가 길게 메아리치는 것 같다. 황궁우를 지나면 지
금은 공사 중이라 출입이 금지된 기년전까지 길이 길게 뻗어 있는데 ‘신이 걷는 길’이라는 신도가 나 있다.
◈자금성(Forbidden City)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이 된 자금성은 천안문을 지나 오문에서 시작된다. 중국 명·청 왕조 때의 궁궐로 500년 이상 최고 권력의 중심지였다. 24명의 황제가 기거하던 이곳은 뛰어난 정원과 건축물, 예술품으로 치장된 9,999칸의 방이 있고 명나라 전성기 때에는 궁녀와 내시만 1만여
명이 기거하던 황궁이다. 갓난아기가 궁내방에서 하룻밤씩 자더라도 27살이 될만큼 세계에서 제일 큰 궁궐이다. 자금성의 기와는 황제의 색깔을 상징하는 황금색이며 1420년에 세워졌다.
고궁의 전반부인 외조에는 황제가 대전의식을 거행하던 태화전과 중화전, 보화전 등 3대전을 중심으로 삼고 문화전, 무영전을 양 날개로 삼은 장엄하고 웅장한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고궁 후반부인 내정에는 황제의 침실인 건청궁, 황후의 침궁인 곤녕궁, 황후가 인사를 받던 교태전 등이 자리하고 있다.800 여개의 궁전과 주각, 9,200 여개의 방이 있는 어마 어마한 규모의 자금성은 중국 역대의 보물과 문화재들이 소장돼 있다.
자금성의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오문은 황제가 조서를 내리거나 출정을 명하는 곳으로 5곳의 아치형 통로가 있는데 중앙 통로는 황제의 전용통로였다. 청나라 말엽 천하를 호령하던 서태후조차 이 문은 이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자금성에는 황제만이 사용하는 계단이 있다.
궁전 바닥에는 화로를 넣는 구멍이 군데군데 있는데 지금의 난방시설이라 할 수 있다.또한 자금성에는 황금색 물 항아리 300 여개가 설치돼 있는데 화재 발생시 불을 끄기 위한 물을 담아두었고 겨울철에는 물이 얼지 않도록 물을 데우는 시설까지 있었다.
◈이하원(The Summer Place)
청나라 때 중국을 통치했던 마지막 여황제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 알려진 이하원은 평지를 파내어 만든 인공 호수 ‘곤명호’와 호수에서 끌어낸 흙으로 만들었다는 만수산, 이를 배경으로 전당, 누각, 정자 등 정교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이 펼쳐져 있다.
청나라 말기 만주족 출신의 서태후는 17살에 궁녀로 들어와 피나는 계략과 노력으로 제7대 함풍황제의 황귀비, 제8대 동치황제의 생모, 제9대 광성황제의 이모로 천하를 호령했다.아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권력에 눈이 멀었던 서태후는 정치에는 관심없던 동태후를 미워해 결국 살해한 것으로 전해질 만큼 사악했고 청나라 말엽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다.
1750년 청나라 건륭이 건설한 이화원은 서태후 집권 시절 여름별장으로 쓰여졌고 예술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언제나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수백 가지의 음식이 차려진 진수성찬을 즐겼던 서태후의 사치스런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길게 나 있는 이하원은 봄철이면 예비 신랑신부들의 사진촬영지로 인기가 높다고.만수산에는 서태후가 자신의 과오를 빌기 위해 세운 사찰 불향각이 자리하고 있다. 호수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궁궐과 사원, 아치형 다리 등 인공적 요소가 자연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하원에는 값나가는 미술품과 장신구 등 서태후가 아끼던 물건들을 소장한 화랑이 있는데 현재 보수 공사 중이다.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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