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TV에서 한 광고를 보았다. 엄마가 잘못한 아이를 야단치고 난 후 우유를 주면서 엄마의 목소리로(직접 아이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가 나오며 끝나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우유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지만, 엄마가 아이에게 주는 우유가 바로 엄마의 마음, 사랑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유를 마시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웠다.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으니까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게 하자, 그냥 하면 밋밋하니까 아이 교육을 위해 따끔하게 야단친 후에 짠한 마음과 사랑을 우유로 대신하자”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이 광고가 나간 후 ‘사랑한다’는 말이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우스개로 패러디 되기도 했었다. 그만큼 사람들 마음속에 잘 자리를 잡았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참 사랑한다는 말에 인색하다. 요즘 드라마에서는 예전보다 잘 나오지만, 아주 아주 어렵게 말해야만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을 나는 이해 못하겠다. 왜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지.
사랑은 연인끼리나 속삭이는 것이라는 인식도 한몫 하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당연히 그런 말이 오가지 않고, 특히 장성한 자식과 부모나 나이든 부부간에는 절대 못할 말인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서 기분 나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나이든 할머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웃게 되고, 무뚝뚝한 남편도 놀라면서도 좋아하지 않는가?
사랑이란 말은 너무너무 흔해, 라는 노래가 있긴 했지만 그 흔한 사랑이라 말을 우리는 너무 안하고 사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가 일어나고, 오해가 깊어지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릴 수 도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뿐 아니라, 기운이 나게 한다.
힘들어 지쳐 있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입가가 올라가면서 구름이 싹 걷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신감도 생기고 우쭐하는 마음도 든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책임감도 생긴다.
나는 나이 들어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날, 늙으신 어머니를 보고 문득 온몸의 용기를 다 모아서 “엄마 사랑해” 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내 생애 최초의 엄마를 향한 사랑고백이었다. 서른이 된 딸에게 단 한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 없던 엄마도 바로 ‘나도 사랑한다’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부둥켜안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덤덤한 듯 하지만 마음속엔 사랑을 가득 안고 있는 가족끼리 입을 열어 말함으로써 더 애틋하고 뜨거운 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이후로 나는 엄마와 예전보다 덜 싸우게 되었고, 사랑한다는 말도 더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하루에 수십번씩 사랑한다고 말하고, 아이도 내게 그 말을 하게끔 시킨다. 사랑한다는 말은 지금 2세밖에 안된 아이가 데이케어에서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를 기다리게 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힘들고 지칠 때 자신감을 주는 비타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남발해도 지겨워지거나 의미가 변하는 게 아닌, 들을 때마다 마음에 새싹을 키우는 햇빛이고 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날마다 사랑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유정민
텐 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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