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보고 있노라면 축구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근무하는 세계은행에서는 세계 각국 사람들이 뒤섞여 근무하다 보니 매 경기 때마다 식당 TV 앞에 해당 국가 사람들이 모여 한골 한골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열광한다. 축구만큼 모든 세계인이 함께 열광하며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축구가 단지 스포츠일뿐이라고 이야기하면 섭섭해할 사람 많을 것이다.
축구의 인기가 이렇게 높다 보니 축구 강국들이 누리는 특권 또한 대단한데 일례로 세계최고의 축구 강국 브라질은 훌륭한 축구 선수들을 길러내고 이들을 수출(?)하여 일년에 벌어들이는 외화수입만 1억달러를 넘는다고 한다. 돈도 중요하지만 사실 축구 강국들이 얻는 가장 중요한 특권은 뭐니뭐니해도 자존심이 아닌가 한다. 객관적 전력으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일본을 축구에서만큼은 꼭 이기고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국은 자국 축구를 육성하기 위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역시 얼마전 프랑스의 축구영재학교인 클레르퐁텐을 본 따서 용인축구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유소년 시절부터 잔디구장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축구 영재가 많이 배출되어 머지않아 루니가 있는 잉글랜드나 호나우디뉴가 있는 브라질 같은 축구강국이 되리라고 기대해본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펠레, 마라도나, 지단, 호나우디뉴와 같은 대선수가 있긴 했다. 당시에 잔디구장은 고사하고 축구공도 제대로 없었을텐데 그런 인물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데 베켄바워는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할 정도였다.
‘갈색 폭격기’ 차범근. 우리나라에서는 그가 과소평가 되곤 하는데, 클린스만, 말디니, 마테우스와같은 대선수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오웬과 발락이 어렸을때 그의 플레이를 보며 축구를 배웠다고 하듯 차붐은 펠레나 마라도나에 뒤지지 않는 대선수였다.
독일에서는 배고픈 나라에서 온 이 축구 천재에게 귀화하기를 강력하게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에서 흔하지 않았던 한국기업의 광고판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프랑크푸르트에서 뒤셀도르프까지 갔다고 하는 그가 고기반찬 앞에 나라를 버릴리 만무하다.
차범근이 다른 축구 천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은퇴 후 생활이다. 펠레는 브라질에서 체육부 장관을 했고 베켄바워는 이번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들보다 세계적 지명도가 떨어지는 파라과이의 골키퍼 칠라베르트도 곧 국회의원이 된다고 한다. 차범근은 이미 80년대부터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실행했던, 그리고 그 이상의 혁신들을 제안했다가 그 이후로 축구협회의 눈엣가시가 되어 대한축구협회 임원 한 자리 못 하고 있다. 98년도 월드컵에서는 한국이 네덜란드에 5대0으로 지자 축구협회는 기회를 놓칠세라 차범근 감독을 불명예 중도하차시키는 전대미문의 조치를 감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척박한 축구 환경에서 운좋게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를 배출했고, 동시에 그 선수를 버렸다.
며칠 전 차범근은 신문에 기고하는 칼럼에서 자신과 자신의 아들 차두리의 축구에 대한 자세를 대조하며 놀라워했다. 자신에게 있어 축구는 한치의 양보도 용납할 수 없는 생사를 위한 전투였는데 아들 차두리는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로 마냥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차범근은 말했다. “이런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준 우리 세대가 자랑스럽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아이러니. 마치 경제 선진국을 원하면서, 전쟁의 폐허 위에서 지금의 한국을 일궈낸 또다른 차범근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것과 닮은꼴이다.
김영무
월드 뱅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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