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내리는 집’<박성배·동화작가>
첫 동화집을 낸 정해정 작가의 ‘빛이 내리는 집’을 감상해 보고자 한다. 정해정 작가는 2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핸드백 노점상을 하는 등 이민초기에 겪는 어려움 속에서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다. 문학에 대한 장르도 시로 시작하여 수필, 소설을 거쳐 동화로 들어선 전력을 갖고 있다. 먼길을 걸어오긴 했지만 깊이 있는 동화는 쓰기 위한 정도를 걸어온 셈이다.
‘빛이 내리는 집’에는 모두 8편의 단편동화들이 실려 있다. 8편의 공통적인 특징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이야기의 흐름이 잔잔하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뒷부분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 것인지 가슴 두근거리면서 호기심을 갖고 읽기보다는 잔잔한 호수를 노 저어가거나 들판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글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어떻게 보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점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정해정 작가의 작품 성향 즉 개성으로 느껴진다.
둘째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끝마무리에서 살짝 치켜올린 동양화의 붓 놀림처럼 팬터지 세계로 들어서는 묘미가 있다. 독자들을 무리하게 작가가 원하는 팬터지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억지스러움이 보이지 않고 정말 자연스럽게 마치 안방에서 현관으로 나오듯이 가볍게 환상적인 공기를 호흡하게 한다.
셋째는 이야기의 소재가 특별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남다른 관찰력으로 얻어진 소재라는 점이다. 이 점 역시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 소재가 진부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소재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한국 어린이들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으로 진부함을 벗어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작가의 눈으로 본 모습들이 마치 햇살이 내리듯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멋은 있지만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쓰는 동화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떤 특별한 소재를 잡아 기승전결의 묘미를 살리는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정해정 작가가 풀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8편의 작품 중 ‘아기와 방울토마토’는 작가의 개성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 소녀 같은 미용사가 아기가 생겼다는 의사의 진찰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용사는 뱃속의 아기가 꼭 방울토마토 같이 예쁠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토마토 모종을 사서 심는다. 그 모종이 하얀 꽃이 피었다 지고, 초록색 작은 열매들이 맺혔을 때 소녀 같은 미용사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덜 자란 아기를 낳게 된다. 태어난 아기는 눈의 신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아서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제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기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 말고는 예쁘게 잘 자란다.
동화의 끝 부분에서 태어나면서 앞이 안 보이는 아기이지만 감각으로 모든 것을 느낀다는 것을 방울토마토는 노래로 보여주고 있다. 동화의 처음 부분에서 일상의 모습으로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서 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끝 부분에서 환상적인 분위기로 행복을 표현하고 있다.
정해정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다보면 마음이 차분해 지고 안개처럼 스며드는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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