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섬기는교회)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헌신에 대한 강조를 자주 듣곤 하지만 실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 일이든 주님 일이든, 일은 대개 다수보다 소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는 32,000 명 가운데 선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중이 떠중이 다수보다, 차라리 일당 백명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용맹스런 소수를 택하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이후 기독교 역사상 수천, 수만명 보다 나은 사역을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세상에서도 20:80 법칙이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예컨대, 한 상점에서 핵심 20%의 고객이 판매 실적의 8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다수의 역사라기 보다는 소수의 역사에 가깝습니다. 소수의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 기독교가 이루어지고 계승되지요. 루터와 칼빈에 의해 거의 절대 다수의 카톨릭을 뚫고 나와서는 개신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에게 헌신되어진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헌신자에게 당신의 권능과 권세를 쏟아부어 주셔서 당신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헌신은 생명과 인생 전체를 통채로 하나님의 손에 올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인정하고 온전히 넘겨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명은 우주보다 더 소중한데,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젊은 시절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것을 발견하는 일로 고민했고 결국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목숨을 바칠만큼 가치있는 것은 하나님의 일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의 목숨을 바칠만한 일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양이나 염소, 황소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들 제물의 조금도 남김없이 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하지만, 또한 우리 역시 이처럼 재로 남겨지는 듯한 온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늘 헌신을 하려고 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헌신된 자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헌신하려고 하는 자와 헌신된 자는 차이가 많습니다. 이미 헌신된 자, 그리스도의 전사, 죽음을 초월하고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로서 살아가십시오. 주님을 위해 육체적인 목숨을 잃어야만 순교자가 아닙니다. 순간 순간 자아를 죽이면서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자가 곧 진짜 순교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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