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번씩 청년학교에서 ‘한국학 강좌’를 실시하고 있는 스토니브룩 한국학회(회장 김수곤)가 25일 ‘고려사 전기의 사상과 문화; 풍수지리’ 강좌를 열고 고려시대 풍수지리 사상에 대해 공부했다.
이날 강좌에 초빙된 스토니브룩 한국학과 김홍경 교수는 “풍수지리 사상이 국가적으로 인정된 것은 고려시대에 와서의 일이다. 고려는 불교 국가였지만 한편으로는 풍수의 나라였다. 불교와 풍수의 결합, 즉 고려는 풍수도참에 의해 흥하고 망했다”며 “태조가 개성에 도읍을 정한 것
도 풍수이론에 따른 것이고 고려가 망하게 된 이유도 삼각산이 개성의 지기를 눌렀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 할 만큼 고려시대는 풍수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태조는 개국과 함께 개경에 7개, 서경에 9개의 사찰을 세웠는데 이는 모두 불력의 가호를 빔과 동시에 수기가 원만치 않은 개경의 지세를 보완(비보사찰)하기 위한 것 이었다. 특히 태조의 훈요십조 가운데 3개 조항이 풍수지리를 말하고 있어 고려시대 풍수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엿보게 한다”고 덧붙였다.또한 김 교수는 “고려의 풍수설이 중국에서 유입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학자간의 견해차가 있다. 자생풍수설도 있고 도선대사가 당나라에서 배워왔다는 주장도 있다. 도선의 풍수를 보면 당나라 일행 계통의 풍수였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도선의 풍수를 주류 풍수와 구별, 형태를
보완 ,지세의 부족을 해결하는 비보풍수라는 주장도 있다”며 “하지만 이 같은 논쟁은 고려시대가 풍수를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고려사 강좌가 한창인 스토니브룩 한국학회는 매달 한번씩 정기적으로 청년학교 회의실에서 강연회를 갖고 있다. 한국 역사와 뿌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718-460-5600
<이진수 기자>jinsu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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