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최정
작업실이 있는 이 곳, 헌터스 포인트는 지금 분주하다. 굴착기와 크레인을 들이대고 붕붕거리는가 했더니 하루아침에 있던 건물들이 사라져버리고, 어제의 언덕이 오늘은 밋밋해져 평지가 되곤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재개발의 청사진을 놓고 주민과 관계 기관, 건축업자들이 수시로 청문회를 하더니 드디어 오랜 동안 버려지듯 잊혀온, 바닷가의 땅들이 움틀, 용트림을 한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악명 높은 우범지역이자 소외된 동네인데 이제 곧 이곳도 금싸라기 땅이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오를 만큼 다 올랐다고도 한다.
내 방은 건물 뒤쪽, 베이를 바라보고 있어 아직은 버려진 부두와 을씨년스럽게 남겨진 골재만 남은 건물들의 잔재위로 까악까악 울어대며 날아드는 물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지만 조만간 그 폐허의 쓸쓸함도 망치 소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해군이 쓰는 동안 땅이 많이 오염되어 있어 대대적인 클린엎 작업이 필요하다더니 얼마 전부터 흙더미를 봉분처럼 쌓아놓고 그걸 까만 비닐로 덮어놓았다. 줄 맞춰 나란히 쌓아놓은, 새까만 비닐 아래 수십 개의 흙더미는 마치 대량학살 된 시체를 덮어놓은 듯 을씨년스럽고 슬프다. 그것은 나치의 만행을 규탄하는 설치 예술 같기도 하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필연적 죽음을 상징적으로 말하는 듯도 하다.
설치예술은 현대미술의 장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평면의 캔바스를 뛰어나와 공간에서, 주위의 지형조건을 배경으로 추상적인 주제를 상징하는 물체를 수십 개, 혹은 수백 개의 똑같은 엘레멘트의 반복으로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며 철학, 내지 아이디어를 표명하는 것... 설치예술에서 물량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그냥 코카콜라의 병을 하나 갖다 놓으면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것을 수 백개의 콜라병을 나란히 진열해 놓으면 그것은 현대 문명을 말하는 추상적도구도 될 수 있고 작가가 갖고 있는 콜라 병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박물관에 설치된 모래더미라든가, 흙더미.. 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그냥 물건에 지나지 않는 물체를 무지막지하게 쌓아 놓고 전시회라 함에 당혹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흙더미의 진열은 내게 있어 생명과 소멸의 윤회 같이 보인다. 뜨겁던 여름은 어느 새 가고 투명한 햇살이 일렁이는 바람 속에 처연하다. 곧 무성한 나무들이 잎새를 떨구고 고개 숙여 어둠을 맞아 드릴 것이다. 우리의 황혼도 이제 멀지 않다.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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