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무용을 선보인 한미고전무용학원생.
■ 공연 리뷰
한국의 춤과 소리 한마당의 여운
즐거운 저녁이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않은 감동까지 선사한 무대. 토랜스 제임스 암스트롱 디어터에서 지난 23일 오후 한미고전무용학원의 ‘한국의 춤과 소리 국악찬양 무용제’가 열렸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동네아이들 잔치 정도로 치부해 굳이 표까지 구입해서 공연을 갔을 리는 만무하다. 사정은 이곳이 한국문화가 척박한 미국 LA라는 것과 도무지 우리 무용인들이 어떻게 이 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다. 그들은 황무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진은혜 원장은 15년간 그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불모의 대지에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이국의 땅에 민들레처럼 씨앗 하나를 퍼뜨리고 있었다.
그 결실은 아름다웠다. 공연은 대부분 청소년들의 북춤과 장구춤, 사물놀이 부채춤들로 구성돼 있었고 간간이 한국 춤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살풀이와 입춤이 공연되었다.
사실, 춤 자체를 평하기란 그리 너그러울 순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 춤 그 자체만으로 이번 공연을 평할 수는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한인 이민사가 100년이 넘었고 한국인의 수가 백만이 넘는다는 남가주에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전무후무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공연도 실은 눈물이 날 지경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 먹고사는 일에 바빴던 이민 1세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땀이 이루어낸 경제적 성장과 부의 축적은 자라나는 2세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신적,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지 않으면 한낱 사상누각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중요성을 우리는 오랫동안 간과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첫 작품인 화관무에 무용을 할 것 같지 않은 아이가 한 가운데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곧 장애아동임을 알아차렸다. 모든 작품이 끝나고 사회자의 안내가 이어졌다.
그 아이는 실비아라고 했다. 실비아는 네 살 반부터 무용을 시작해 영민하게 춤을 익혀왔는데 여섯 살 조금 지나서 생명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 후 지금까지 오른쪽 손과 다리에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실비아는 사춘기 정도의 여자아이로 성장해 있다. 정상인도 훈련이 고되기로 유명한 북춤이며 장구춤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공연에 임하는 것을 보고 난 모든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뜨겁고 뭉클한 무엇이 가슴께를 치고 나왔다.
네 살배기 꼬마들의 앙증맞은 춤동작은 관객 모두에게 폭소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인형처럼 조그만 손동작 발동작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한민족의 피가 힘차게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옥의 티라면 종교적인 선교무용 형식을 빌린 몇몇 작품들이 음악선곡부터 매우 거슬렸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가야금 병창의 고수들의 연주는 수준급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난데없는 선교찬양이 더해져 황망함을 금할 수 없었다. 선교는 선교지에서 하는 것이 마땅하며 공연무대 위에는 순수한 예술작품이 올려지는 것이 좋다.
이러저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공연이 성공적이었다는 개인적 의견은 바로 무대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고 한민족의 소리와 춤이 객석과 무대를 모두 감동시켰다는 데에 있다. 관객은 무용수들의 춤을 통해 감정이입과 미적 감동을 만난다. 마지막 작품인 북소리는 오랜 연습과 고된 훈련의 결과물답게 그 리듬과 동작이 매우 크고 당당해 극장을 가득 메운 모든 관객들의 가슴으로 힘껏 자맥질 쳐왔다. 그날 공연은 바로 그 감동의 여운이 오래 함께 한 무대였다.
김정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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