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도 평화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해도 한국인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인들의 관심을 끈 문학상 부문도 터키의 오르한 파묵에게 돌아갔다. 문학상 분야의 경우 한국의 고은 시인이 후보로 올라 있어 한인들의 관심도 적지 않았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던 지난 12일, LA 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 현대작가 미주 순회 낭독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노벨문학상은 토론거리로 등장했다. 참석한 한인들의 관심은 ‘한국에서 과연 노벨문학상이 나올 수 있느냐’ ‘한국의 문학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것에 모아졌다.
강원대에서 한국 현대문학을 가르치는 신철하 교수는 “한국 문학은 모든 문학 사조를 아우르고 있는 세계 최고”라고 단정지었다. 199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자이자 이 날 낭독자로 나선 최수철 한신대 교수 역시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의 시각은 어떨까. 황순원의 ‘늪’과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 등을 영어로 번역한 브루스 풀턴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 교수는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어 간접적으로 대답했다. “현대차 임원들은 미국시장에서 차를 판매할 때 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차가 무엇인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한국 문학의 외국어 번역은 정반대다. 외국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이 아니라 출판사와 관련 이권 단체가 원하는 작품이 우선적으로 번역된다. 그러니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게 되고 좋은 반응을 얻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좋은 제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케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풀턴 교수의 이런 주장은 이웃 일본의 예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냈다.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그의 작품은 26개 언어 133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었다. 1994년도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역시 19개 언어로 150종이 번역됐다. 그만큼 세계인들이 일본 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 문학작품은 1990년대 들어서야 겨우 외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그 종류는 영어와 불어 등 지극히 제한적이고 원문의 감동을 살리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한국은 나라가 작아서 세계적인 문학이 나오기 힘들다”는 자조 섞인 얘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적인 문학을 갖고 있으면서도 번역을 못해, 다시 말해 마케팅을 못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으로 누군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한국의 황석영,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중국의 모옌, 그리고 터키의 오르한 파묵이 유력하다”는 오에 겐자부로의 예견도 그냥 흘려들을 게 아니다.
수년째 후보를 내고 있는 한국 문학. 외국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을 그들의 언어로 제대로 마케팅할 때에 한국 문학도 노벨상 고지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것이다.
<정대용> 특집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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