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프닝이라고 하기에는 낯부끄러울 정도다. 국내 제1의 영화 투자배급사라는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엔터)의 필름 배달 사고와 그사고 처리 과정이 동네 구멍가게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CJ엔터테인먼트가 해외배급을 맡은 영화 ‘왕의 남자’의 제50회 런던영화제 상영이 필름 배달 사고로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왕의 남자’는 런던영화제 ‘영화 광장’ 섹션에 초대돼 19일 런던 시내 오데온 웨스트 엔드 극장에서 2회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필름이 상영일 전에 도착하지 못해 취소 사태가 벌어진 것.
문제는 여기서 그친 게 아니다. 사고 확인 과정에서도 또 다시 ‘사고’가 일어났다.
CJ엔터테인먼트는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20일 밤 배달 의뢰를 맡긴 국제택배서비스 회사에 확인한 결과 필름이 18일 오후 5시49분(현지시각) 도착했다.
영화제 측에 이 사실을 전달했는데 사무국이 진행상의 실수로 전달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홍보실을 통해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그런데 21일 밤 10시께 최종 확인된 바에 따르면 18일 도착한 필름은 영어 자막이 들어 있지 않은 잘못된 필름이었고, 영어 자막이 들어있는 필름이 도착한 것은 19일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 측은 사고 경위 조사 과정에서 택배회사가 첫번째 필름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바람에 착오가 생겼다고 밝혔다. 이를 확인한 우리 직원은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고 있어 분명히 두번째 필름의 도착시간을 물어봤는데 택배회사 직원이 이를 못 알아듣고 첫번째 필름 도착 시간을 가르쳐 준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
결국 CJ엔터테인트는 자사의 사고 책임 회피를 위해 아무런 잘못이 없는 런던영화제 사무국과 택배회사 직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다. 런던영화제 사무국이이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막혀 할까.
영화제 사무국의 실수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사고 경위 조사 과정의 사고도 일이 커지려다 보니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식의 변명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최근 행보를 보면 업계 1위 그룹이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뭐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징후가 곳곳에 드러난다.
20일 끝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CJ엔터테인먼트는 겉으로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참석자 모두를 불쾌하게 만든 영화 ‘중천으로의 초대’ 이벤트를 진행해 빈축을 샀다. 그 행사는 영화 ‘중천’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 측 인사들과 그들이 특별히 초청한 몇몇 인사들을 위한 ‘쇼’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행사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준비한 실무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행사였는데 왜 이해를 못하느냐 혹은 이렇게 욕먹을 바에는 내년에는 아예 하지 말아야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은 채.
올 초 ‘왕의 남자’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공동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보다 더 활개를 쳤다. 작년 쇼박스㈜미디어플렉스에게 영화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주고 난 후 모처럼 날아든 낭보였기 때문이다.
쇼박스가 곧바로 ‘괴물’로 ‘왕의 남자’ 흥행 기록을 깨자 추석 시즌만큼은 질 수 없다며 모처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이 이뤄진 ‘타짜’의 스크린 수를 600개 이상으로 확보하며 세를 과시했다.
영화계에서는 이렇다 할 경쟁작이 없었던 ‘괴물’이 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았을 때와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추석 시즌에 6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점령한 것은 또 다른 상황이어서 이는 분명히 CJ엔터테인먼트의 전횡이라며 수근대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 일 이후 두 회사의 과열 경쟁으로 야기될 상황에 대한 우려도 팽배했다. 물론 영화 관계자들은 CJ엔터테인먼트의 파워 때문에 드러내놓고 비난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CJ엔터테인먼트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CJ그룹의 이미경 부회장이 얼마 전 세계여성상을 수상하며 위상을 드높인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아 이 같은 사태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그룹 부회장의 세계여성상 수상이 혹시라도 직원들의 기강 해이와 안일한 태도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이런 사태와 영화계의 정서를 이 부회장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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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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