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역사를 바꾼 지도자를 꼽는다면 누가 뽑힐까. 미국인들은 아마 로널드 레이건을 첫 순위에 놓을 것이다. 재임 기간은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조롱 받았지만 지금은 동서 냉전을 미국의 승리로 이끌고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려 놓은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이 ‘시장 경제’와 ‘작은 정부’의 복음을 전파한 ‘예수’라면 그에 앞서 이 복음이 세계를 덮을 것을 예고한 ‘세례 요한’이 있었다. 바로 마거릿 대처다. 레이건보다 한해 일찍인 1979년 영국 역사상 처음 여성 총리가 된 대처는 총리가 되기 3년 전인 1976년 소련의 세계 지배 야욕을 맹렬히 규탄, 소련 언론으로부터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집권한 후 노조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의 여인’ 답게 공기업의 민영화와 웰페어 혜택 축소, 규제 완화 등 시장주의적 정책을 밀고 나가 높은 실업과 인플레로 상징되던 소위 ‘영국 병’을 고쳤다. 1990년 당내 권력 투쟁에서 져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그녀가 이끈 보수당은 1997년까지 장장 18년간 집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1945년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 노동당에 패배한 후 30년간 영국은 노동당 판이었다. 선거를 하나마나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이처럼 거듭된 패배 속에서도 보수당 일각에서는 ‘왜 우리는 자꾸 지나’ 하는 진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노동당 정책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고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절실히 느낀 인물이 바로 대처였다. 보수당의 오랜 성공은 뼈아픈 반성이 낳은 옥동자였다.
1997년이 되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18년 동안 권력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노동당 내에서는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나’ 하는 모색이 일었다. 그 결과 종래의 구태의연한 사회주의적 모델로는 안 되고 뭔가 참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신인 정치인이 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바로 토니 블레어다. 200년래 최연소 총리가 된 그는 그 후 노동당으로는 처음 내리 세 번 총선에서 이기고 사상 최장 총리 기록까지 세우는 업적을 남겼다.
미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1994년 40년 동안 연방 하원 다수당을 차지해 보지 못한 공화당은 ‘미국과의 계약’이란 아이디어를 내놨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들이 집권하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오랜 집권으로 자만과 부패에 빠져 있던 민주당에 식상한 유권자들은 공화당에 기회를 주기로 했고 그 결과 공화당은 연방 상하원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12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국민들은 공화당의 무능과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데 공화당 지도부는 뭐가 잘못됐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당내외 공화당지지 세력 가운데서도 “이번 선거는 공화당이 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예사롭지 않다.
인간은 잘 나갈 때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실패를 겪고서야 비로소 반성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 점에서는 성공이 아니라 패배야말로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약인 셈이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고 나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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