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입학생 모집과 관련해 새로운 정책을 도입했다. 미 전국에서 학생들을 받아들여 캠퍼스에 다양성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였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에 합격했는데 ‘집에서 너무 멀다’고 안가는 학생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초반만 해도 이들 대학은 ‘지방’ 대학이었다. 그 지역 출신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갈 뿐 멀리 서부나 남부에서까지 입학 희망자들이 몰리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낮았을 뿐 아니라 소위 ‘명문’찾아서 타주로 까지 유학 가는 분위기는 더 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북동부라는 울타리를 넘어 전국의 다양한 지역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유치해 캠퍼스의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하겠다는 대학들의 취지는 그럴 듯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대학들이 표방한 ‘지역적 다양성’은 포장일뿐 알맹이는 따로 있었다.
당시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모두가 골치를 앓고 있었다. 눈엣가시 같은 ‘소수계’가 캠퍼스로 너무 많이 몰려들기 때문이었다. ‘소수계’란 바로 유대인들. 유대인 학생들이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입학원서를 제출하는 데 무작정 불합격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적대로 받아주면 캠퍼스가 온통 유대인 천지가 될 것 같으니 골치가 아픈 것이었다.
그때 어느 머리 좋은 대학당국자가 짜낸 아이디어가 ‘다양성’이었다. 유대인 학생들이 대부분 뉴욕, 보스턴 등 북동부 지역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 전국에서 학생들을 뽑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유대인 입학생 수를 제한했다.
‘다양성’이슈가 요즘 미국 명문 대학들에서 다시 일고 있다. 성적대로만 하면 특정 ‘소수계’가 너무 많이 입학할 것 같으니 캠퍼스의 ‘다양성’을 위해 ‘쿼타를 둔다’‘아니다, 쿼타 같은 건 없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세기 초반과 달리 지금의 ‘다양성’은 인종적 다양성, 지금의 ‘소수계’는 아시안이다. 며칠 전에도 월스트릿 저널에 명문대학들이 아시안 학생들을 차별한다는 기사가 나와서 대학 진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아시안 학생들은 다른 인종들보다 성적이 더 높아야 합격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SAT 만점에 학교 평균성적이 4.0를 넘고, 학생회 활동, 자원봉사 등 과외활동 활발하게 다 했는데도 아이비리그에서 떨어진 예는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다.
UC 계열을 봐도 백인 친구는 합격한 대학에 SAT 점수며 학교 성적이 더 높은 한인 학생은 떨어진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아시안이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면 SAT 점수가 적어도 50점은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다.
대학 당국의 주장은 여전히 ‘다양성’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아시안 인구는 전체의 13%인데 UC 버클리에는 42%, UCLA에는 38%, UC 어바인에는 60%가 넘으니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쎄, 그렇다고 인종을 근거로 차별을 해도 되는 걸까. 조만간 크게 법적인 문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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