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의 도시, 비엔나
김 희봉(수필가)
여행은 무도회에의 초대이다. 화려한 쉔부른 여름 궁전에서 연회복을 입은 선남선녀들과 함께 추는 왈츠의 향연. 손등에 사뿐한 입맞춤을 시작으로 흥취가 익어 가는 무도회에의 초대이다.
비엔나는 도시 전체가 우아한 무도회장 같았다. 요한 스트라우스가 켜는 푸른 다뉴브의 경쾌한 왈츠가 어디서나 바람결에 들리는 듯 하다. 130년의 전통을 가진 화려한 오페른볼과 카이저볼 등 춤의 축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무도회도 처절한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시민들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물론 오랜 세월, 세계의 방랑자들을 매혹시킨 이 중세도시의 매력은 가벼운 왈츠의 춤사위에만 있지 않았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했다. 640년 지속된 합스부르그 왕조의 자취, 고딕과 바로크 풍의 예술조각들과 건축물들. 그리고 백설을 인 알프스산록의 풍광이 지상 낙원의 중심임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이 풍요한 문화와 자연유산 중에서 누군가가 비엔나의 정수(精髓)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클래식음악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3대 천재들이 놀랍게도 거의 동시대에 비엔나에서 음악을 꽃피웠다. 하이든과 브람스, 리스트 같은 대가들도 이곳에서 고전음악을 성숙케 했다.
나 같은 음악의 문외한도 클래식을 들으면 깊은 평안함을 느낀다. 긴장과 이완이 함께 주는 정서적 안정이랄까. 다른 장르에선 느끼지 못하는 이성과 감성간의 균형미다. 이 조화는 서양에서 계승돼온 여러 양면적 요소들(dualities)이 이시기에 음악 속에 녹아졌기 때문이란 말에 공감한다. 영계(靈界)와 속세, 단음과 복합음, 전통과 진보, 대중과 선민사상. 교회음악과 세속음악 등의 이원(二元)적 요소들의 어우러짐이다.
이 클래식음악의 조화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소위 고전파로 불리는 천재들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체계 위에 음악을 세워 놓은 데 있다고 믿어진다. 소나타의 틀만 보아도 제시-전개-재현이라는 순환도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짜임새가 고전음악의 대표적인 골격이 된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슈베르트나 브람스 같은 낭만파 음악가들은 고전파의 형식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 틀에 매인 음악 형식에 도전하면서 자유로운 환상과 상상력을 도입한다. 심포니를 한 장르로 발전시키고, 운치와 개성이 넘치는 가곡과 오페라들을 등장시켰다.
이튿날 아침, 비엔나의 천재 음악가들을 찾는 우리들의 순례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의 묘지에서 시작되었다. 불멸의 음악은 늘 우리마음속에 살아있는데 왜 또 다른 우리는 그들의 육체적 죽음을 한사코 확인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밝고 잘 꾸며진 음악가묘역의 방문은 깊은 감회와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행려병자처럼 버려져 무덤도 없이 기념비만 서있는 모차르트, 최고의 악성(樂聖)으로 당시도 추앙 받았지만 귀먹은 고통에 늘 죽음 가까이 살았던 베토벤. 베토벤을 숭배하여 그의 곁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던 가곡의 왕, 슈베르트, 파란 많은 인생을 살다가 나란히 누운 천재들의 무덤 가엔 꽃이 만발하고 나비들이 날았다. 어디선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들려오는 듯해서 우리는 귀 기울이며 비석가를 맴돌았다.
저녁시간, 우리는 모차르트의 음악회에 초청을 받았다. 18세기 의상을 입은 비엔나 오케스트라의 콘체르트. 유서 깊은 비엔나 필의 무대인 황금홀은 초만원이었다. 우리는 아마데우스 탄생 250주년의 열기 속에서, 그의 오페라 돈 지오바니의 듀엣에 열광했고, 마술피리의 아리아에 취했다. 우리는 18세기로 건너가 모차르트의 탄생에, 그의 걸작들에, 그의 천재성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비엔나로의 여행은 모차르트가 손수 보내준 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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