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공인회계사)
60년대말 유학생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미국사람과 만날 때 똑바로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와 달리 눈 색깔이 여러 가지이고 유난히 큰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자면 마치 내가 깊은 심연에 빠져들어가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하질 않다. 아마 이런 일들이 서양사람들을 회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 이들이 한국에 선교하려 올 때 서양사람과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이야기가 그들의 큰 눈에서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약 40년 가깝게 이곳에 살며 미국 사람들을 접할 때 아시안들을 대하는 것보다 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이런 연유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눈에 대한 가정교육을 받는다. 눈은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니 항상 밝은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혹시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한테 꾸중을 들을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면 부모들은 “ Look at my eyes, if not, you are not telling the truth”라고 타이른다. 즉 눈을 뜨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상대방을 주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하며 사회에 적응한다.
대화중에 상대방이 주의깊게 자기 눈을 쳐다보고 이야기하질 않으면 자기를 등한히 했다고 퍽 언짢아 하는가 하면 두번 다시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eye contact’ 하는 대화술이 가장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현의 방법이라 한다. 이런 생활습성에서 자란 사람들은 외국인들 특히 아시안들과 접촉하며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나름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고. 어떤 이는 눈 작은 아시안들이 무슨 큰 비밀을 감추지나 않았나 하며 경계심을 품게 된다고 말한다. 좋게 이야기하면 똑바로 쳐다보지 않는 아시아인의 눈에 신비함을 느낀다고 하며 상대방이 여성일 때는 더 하다고 한다.
그런대로 이곳에 평생 살고 있는 다른 아시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의 범절을 엄격히 받고 이민온 우리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뭐가 대단하다고 마치 싸움을 거는 사람처럼 쳐다보는 게 여간 부담스럽질 않다. 상대방 눈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째려본다는 이야기인데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다가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려 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은 생각을 하며 시선을 피할라치면 상대방도 나를 따라 눈동자를 옮긴다.
이런 관습의 차이로 미국을 아는데 퍽 오랜 세월을 걸린다. 그래서 이런 습성에 젖지 않은 일본사람들은 서양사람들과의 관계를 교육시키는 방법 중에 이러한 일도 있다고 한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기가 민망하거나 불손하다고 생각이 들면 코언저리를 처다보며 대화를 하라고 일러주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 이런 방법이 눈에 초점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상대방에 예의를 갖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국에 살며 행동 거지가 불편할 때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받고 사는 생활에 일일이 구색을 갖추고 살지 말고 좀 내멋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지만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곳에 “로마인” 처럼 사는 것이 생활의 지혜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친지의 이야기처럼 나도 내일부터는 민망한 마음 접고 마치 싸움패처럼 상대방을 째려보는 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이렇게 주류 사회에 동화되며 나도 조금씩 미국 사람이 되어 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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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쓴 이종혁 공인회계사는 오클랜드 지역 추수감사절 만찬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12월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노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본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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