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컴퓨터’의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의 대표적인 괴짜다. 시리아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다. 미혼모인 그의 어머니가 기를 능력이 없다고 판단, 양육을 포기하는 바람에 다른 집에 입양된 것이다.
북가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리건의 이름 없는 대학에 들어갔으나 한 학기 만에 중퇴한다. 그리고는 영혼의 구원을 찾아 인도로 떠난다. 삭발한 채 인도 옷을 입고 미국에 돌아온 그는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다 스티브 워즈니액과 애플 컴퓨터 사를 차린다. 그 때가 1976년이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개인 컴퓨터 바람과 함께 애플은 뜨기 시작했고 1980년 이 회사가 상장되면서 잡스는 30대에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한 때 조운 바에즈와 연인 사이였고 생선은 먹지만 네발짐승은 먹지 않는 특이한 식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철학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급기야는 1985년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잡스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학술용 고급 컴퓨터 제작회사인 넥스트를 설립하고 만화 영화 제작사인 그래픽스 그룹을 인수하며 자신의 길을 간다. 그래픽스 그룹은 후에 픽사로 이름을 바꿔 ‘토이 스토리’, ‘네모를 찾아서’, ‘개미의 일생’ 같은 아름답고 재미있는 만화 영화의 고전을 만들어낸다.
애플사가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1997년 다시 애플로 돌아온 그는 2001년 지금은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된 아이팟을 개발, 대박을 터뜨린다. 2004년에는 췌장암 진단으로 생명까지 위태로웠으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가 9일 셀폰에 MP3등 오디오, 비디오 플레이어, 카메라, 컴퓨터 기능까지 갖춘 아이폰(iPhone)을 선보였다. 애플은 아이폰 출시를 계기로 아예 회사 이름을 ‘애플 컴퓨터’에서 ‘애플’로 바꿨다. 그가 셀폰 시장에 눈을 돌린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팔린 아이팟 수는 1억 개 정도인 반면 작년 한 해 동안 팔린 셀 폰 수는 10억 개에 달한다. 이 시장의 극히 일부만 파고들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회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격 500~600달러대로 우선 비싼데다 월 수수료도 90달러에 달해 일반 소비자는 사용하기 어렵다. 거기다 경쟁사들도 보다 싼 가격에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셀폰을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스탠포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대학 시절 수강한 서예 강좌에서 아름다움을 배웠다며 이를 택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 컴퓨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가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들어간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평범한 삶을 택했다면 맥킨토시와 애플, 아이팟과 픽사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을까. 아이폰이 과연 이번에도 세상을 바꿀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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