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종로의 해장국집 ‘청진옥’을 찾아 놀란 적이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일제시대인 지난 1939년 문을 연 이래 70년 가까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년 365일 가마솥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청진옥은 한국의 대표적‘노포’(老鋪)로 꼽힌다.
대를 이어 가는 가게, 혹은 아주 오래된 업소를 뜻하는 노포. 일본의 경우 최소 100년의 역사를 지닌 점포나 회사가 1만5,200여개에 달한다니 가히‘노포의 천국’이라 불릴 만하다. 몇 년 전 서울 한국일보에서 창업 50년 이상 업소들을 취재한 ‘한국의 노포’ 시리즈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민 100주년을 갓 넘긴 한인사회에서 노포를 말하기란 쑥스런 감이 없지 않다. 특히 1~2년 심지어 몇 달 만에 간판을 바꿔다는 타운업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한 세대로 여겨지는, 세 번의 강산이 변하도록 한 우물만 파거나 부모의 노하우와 자녀의 비전이 하나가 되어 대를 이어가는 비즈니스도 적잖다.
노포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자동차, 보험, 건설에서 한의원, 약국, 안경, 여행, 유리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한스전자, 신세계 백화점, 하바드 약국, 엄한광 한의원, 고암건설, 한미보험, 가주 크라운 종합사무기상사, 고려여행사, 나성백화점, 안스피아노 등은 모두 ‘아름다운 서른’을 넘겼다. 본보 업소록을 대충 훑어보니 30곳을 훌쩍 넘는다.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정음사나 엄마와 딸이 각각 1세와 2세의 입맛 잡기에 성공한 ‘신미캐더링’, 부자에서 사제가 된 권중규치과그룹 등도 ‘될 성 싶은 노포’에 포함시키고 싶다.
노포의 기본 요건인 ‘장수’와 ‘성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시각으로 본다면 노포의 의미는 폄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길을 고집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당당한 위상은 인정할 만하다. 이들의 장수 노하우를 들어보자. 33돌의 한스전자. 경쟁 업체들이 무리한 확장경영에 몰두하고 광고비를 ‘물 쓰듯’ 할 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마진이 적은 가전의 경우 과당경쟁에 끼어들거나 경비를 늘렸다간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업계의 금언을 되새겼다. 그 대신 입소문을 최대한 활용, 전체 손님의 80% 이상을 단골로 끌어올릴 정도로 안정적인 고객층을 확보했다.
또 다른 장수업소는 “적잖은 타운 업소들이 분에 넘치는 홍보 예산을 쓰다 효과가 나지 않으면 제풀에 꺾이는 것 같다”며 “남들보다 비싸게 팔지도 않지만 제 살 깎기도 안하겠다는 경영원칙을 고수했다”고 강조한다.‘노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수분지족’(守分知足), 족함을 알고 분수를 지킨다는 정신. 장인정신과 자부심으로 올곧게 한 길로 정진하는 마음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기본’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간다. 교육도 중시, 구성원간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형성해야 한다. 아름다운 전통을 지킨다. 물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언뜻 들으면 노포의 요건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남들이 한다면 무리하게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안 된다 싶으면 하루아침에 갈아치우는 타운업계를 돌아보면 금과옥조로 여길 만하지 않은가.
진리는 항상 평범함 속에 존재한다. 그런 평범한 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행했는가가 오늘날의 노포를 존재하게 했다. 타운의 노포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해광 경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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