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장이로 46년을 살아온 허 영 사장이 고객의 양복을 재단하고 있다. <진천규 기자>
“양복입던 친구 부러웠는데… 천직 될줄이야”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의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에게 혼나 가면서요. 그후 기술자로 초청받아 71년 27세의 나이로 도미해 타운업소에서 11년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독립해 내 가게를 차린 것이 82년….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미스터 영 양복점’(3350 Wilshire Bl. #110)의 허 영(62) 대표는‘양복 만들기 46년’한 우물만 파 온 타운의 올드타이머. 머리에 세월의 흰서리가 앉은 모습으로 옛날을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린다. 올곧게 외길을 걷기가 쉽지 않은 인생에서, 더욱이 본격 이민의 역사가 짧은 한인타운에서 그는 대표적인 ‘노포’ 업소(아주 오래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다들 한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던 10대 시절, 혼자만 양복 스타일로 다니던 친구가 늘 부러웠는데 알고 보니 그의 외삼촌이 양복점을 하고 있더란다. 허 대표는 부러움이 이끄는대로 친구와 함께 업계에 입문했고 그것이‘천직’이 되었다.
그가 LA에 첫 발을 디딘 때는 한인이 거의 없어 만나면 반가워 서로 집에 놀러 오라고 초대하던 시절. 한인업소가 손꼽을 정도였고 타운도 형성되지 않았다. 10여년 지나 자신의 업소를 열 때도 타인종을 겨냥, 윌셔와 라브레아 인근을 선택했다. 미스터 영 양복점은 그로부터 5년뒤인 1987년 현 위치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의 업소가 노포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퀄리티 추구’ 라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한뜸 한뜸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들다 보면, 자연 입소문을 타게 마련이고 매출 증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은 덕에 타인종 고객 비율도 30~40%나 된다.
“광고나 세일이 아니라 품질로 승부해야 고객이 내 업소를 소개해 주고, 다른 사람들은 믿고 찾아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단골이 전체의 70% 정도로 유난히 많다. 자신의 결혼 예복을 맞췄던 이가 수십년 후 장가갈 아들을 데리고 다시 찾는 일도 드물지 않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길을 계속 가고 싶다”는 그는 사업적인 이유를 떠나서도 양복점 운영이 좋다.‘얼굴이 보고파서’‘안부가 궁금해서’오다가다 들르는‘친구 같은’고객들이 사랑방 같은 그의 업소를 많이 찾아서이다.
대물림을 생각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긴 힘들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나마 두 아들중 막내가 패션 디자인을 전공중이어서 길동무가 되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
“돈만 생각하면 할 수 없는 비즈니스가 양복점”이라는 허 대표는 다운타운 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지내는 등 커뮤니티 봉사에도 힘써 왔다.
(213)383-0202
<3면에 계속><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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