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가족치유상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얼마전에 남편과 오랜만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의도했던 거와는 달리 서로 감정만 상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던 중에 주변에 상담일을 하고 있는 선배의 제안으로 특별한 대화없이 서로를 만나보는 시간을 시도해 보았다.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각자 반대쪽 벽에 기대어 서서 마음이 가는대로 서로를 향하여 한걸음 두걸음 다가가다 방 한가운데서 만나는 것이었는데. 중요한 건 다가가는 동안에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 사람을 만났다는 신선한 감동 때문이었을까. 혹은 이 사람의 눈을 이렇게 잠시나마 똑바로 바라본 적이 얼마만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진정한 만남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가족을 대할 때, 혹은 친구나 직장 동료들을 대할 때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익숙한 사이인지라 그저 건성으로, 그리고 때론 용건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때가 흔히 있을 줄 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들어야 할 이야기,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이야기 등은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특별한 의도없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받아주는 건 나 자신과의 만남이 있은 후에야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만남은 상담을 통하여 사람들이 얻는 가장 큰 위안이기도 하다. 만나는 첫 순간부터 본인에게 절실하고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흔히 일반적인 관계에서 사람들이 걸쳐야 하는 절차를 수월하게 뛰어넘게 되는 상담일은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다. 상담자의 시선과 관심이 자신에게 모아지고, 표현되는 말과 감정을 집중하여 들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또 때론 흐트러진 생각을 정리하여 들려주며 질문을 통하여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등등. 기쁨과 위안이 되는 만남이 상담실 밖에서 더 많이 더 자주 이루어졌음 좋겠다.
그리고 나 자신과의 만남. 필자는 아직 자신과 만나는 연습을 열심히 하는 중이라, 뚜렷한 제안을 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연습을 하는지를 간략하게 나누고자 한다. 먼저, 틈틈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하는데, 특히 두 눈을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바라본다. 가끔 경험한 일이지만 눈에 담겨져 있던 슬픔, 불안, 혼동이 가라앉기도 했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은 체질에 맞질 않아 주로 걷거나 요가를 하면서 조용히 자신과 만난다. 머리속을 들여다보고 가슴속을 들여다보고, 몸 곳곳에 어떤 기억 어떤 감정이 배여 있는지 가만히 느껴 본다. 또 하나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생각과 경험의 변화뿐 아니라 어떤 희망, 욕구,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가능하다면 기회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여러 형태의 만남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대하는 필자의 태도가 차츰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집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짧은 대화라도 성의를 다하는 점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평소 같이 대화를 나눈 기억이 없는 한 동료가 점심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무슨 농담을 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했더니 처음엔 조금 멈칫하더니 곧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꽤 흥미진진한 대화였다. 그리고 저녁에 딸아이와 놀면서도 예전처럼 내일을 계획하며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은 우리 딸과 나의 시간이므로 많이 안아주고 이야기해 주고 나도 덩달아 열심히 놀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알고는 지냈지만 별다른 만남이란 게 없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아쉬움이 남는다. 소중한 뭔가를 잃은 듯하다. 자신과의 만남,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거듭 이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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