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자녀들의 한국행이 부쩍 늘었다. 일부러 귀 기울이지 않아도 “우리 아이가 한국에 가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여기서 낳고 성장한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의 외국기업체나, 정부기관, 연구소. 학교 등에서 스카웃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원어민 교사’나 “영어 학원 강사‘로 나가 있었다.
10여년 전 시작된 한국의 원어민 교사 초청 프로그램등에 ‘등 떠밀려‘ 나간 젊은이들도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분 영어 광풍에 편승해 생긴 호화 영어학원, 고액개인과외에 맛 들인 행렬이 더 긴 것 같다.
대학졸업 후 한국을 배우라는 부모성화에 ‘원어민 교사‘로 나갔던 K씨는 영어강사 돈벌이가 좋아 그대로 주저앉았다. 결혼도 하고 영어학원 운영을 준비중이다. 친구 아들 J도 동부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 진학까지의 1년 반 동안 매달 450만원이나 준다는 청담동 학원 강사로 떠났다. J는 재학중 여름 방학 3개월간 고액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절약해서 뭉텅이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다. 혼혈 한인 2세들조차 원어민 교사 프로그램으로 나가 영어 강사직을 즐긴다는 사례도 많이 접했다.
부모가 사정해도 선뜻 방문하지 않았던 한국을 이제는 스스로 방학때나 졸업 후 몇 년씩 나가 있겠다고 나선다. ‘모국을 알기 위해’ ‘부모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느라’등의 여러 가지 기특한 이유가 많다. 그러나 장기체류의 가장 큰 목적은 큰 돈을 쉽게 벌겠다는 것이다.
평생 써 온 ‘내 나라’ 말인 영어를 고가 상품으로 팔면서 인기 최고의 선생님으로 대접까지 받는 환경 때문에 입국 행렬은 길어지고 있다. 영어만 잘 할 뿐 영어교육과는 거리가 먼 이들도 대학원 학비나 미국서는 벌기 어려운 거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행장을 꾸린다.
배경은 물론 한국의 영어열풍이다. 초등학교부터 영어수업이고 며칠 전에는 카이스트(KAIST)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고 발표할 정도가 됐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해외 어학연수 경력이 없으면 이력서를 낼 필요도 없다고 한다.
당연히 영어 학원과 고액 과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네이티브 스피커들의 수요도 엄청나졌다. 수년 전부터 영어권 출신의 원어민 교사를 선발. 전국 초중고교에 배치해 온 한국 정부는 오는 7월에는 아예 ‘‘원어민 교사 전담팀’을 교육부에 신설하기로 했다.
원어민 교사는 평균 250만원 이상의 월급에 주택과 왕복비행기 요금, 유급휴가, 정착금, 의료보험, 퇴직금, 지방수당, 특별수당이 따로 주어진다. 게다가 유명 학원 강사로 일하거나 추가로 개인교수를 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플러스 알파가 보태진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에게 얼마나 유혹적인가. 능통한 영어라는 자산 하나면 힘든 노력 없이도 거액봉급이 보장된다. 한국말이 서툴러도 인기를 얻고 교육에 대한 사명감 없이도 대접을 받으니 발목이 잡힐 밖에. 예쁘고 잘생긴 한국 젊은이들과 만날 기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영어 열풍이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으니 더 머물고 싶다.
미국에 돌아와 대학원에 진학한다거나 전문직에 진출한다는 애초 계획이 스스르 무너진다. 쉽게 돈을 벌어보니 새삼스럽게 어렵게 일은 하기 싫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흐르고 영어 강사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도 어정쩡하다.
영어나 교육을 할 수 없는 무자격자들이라도 영어권 나라에서 대학만 졸업하면 무조건 환영일색이었던 한국의 분위기가 한편으로는 냉냉해 지고 있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나 부작용 들도 자주 터지면서 원어민 교사 자격 조건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는 반발도 커지고 있다.
평생 영어 강사로 만족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진로를 바꿔야 할 것이다.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한국의 영어강사라는 우혹의 굴레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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