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팀’이 완전히 물갈이 된다. 이라크 현지 사령탑인 조지 케이시 사령관과 잘메이 카릴자드 주 이라크 대사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육군 대장과 라이언 크로커 현 파키스탄 대사가 채우게 된다. 국방장관은 도널드 럼스펠드에서 로버트 게이츠로 이미 바뀌었다.
주요 언론들은 게이츠 국방과 페트레이어스 현지 주둔군 사령관, 크로커 대사 등 ‘신 이라크 3인방’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 같은 인사가 3년 전에 단행됐다면 이라크의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논조에서 이라크 정책과 집행을 주도했던 럼스펠드에 대한 은근한 조롱이 느껴진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파헤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도 그의 최근 저서 ‘부인하는 마음’(State of Denial)에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리더십에 큰 의문부호를 달아놓았다.
럼스펠드는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연방하원 4선의원에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고 국방장관직에도 두 번이나 올랐다. 정치권에서 비껴있던 시기에는 국내 굴지 대기업 2곳의 총수로 활약했다. 30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68세에 생애 두 번째로 국방장관 직에 오를 때까지 정·관·재계 두루 오가며 이처럼 찬란한 경력을 쌓은 그에게 리더십이 없었을 턱이 없다. 문제는 그의 리더십이 감을 줄만 알았지 풀 줄 모르는 ‘나사형’이라는데 있었다.
럼스펠드는 대인 관계 및 조직 관리방식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프린스턴 대학시절 레슬링부 캡틴으로 활동하면서 체득했다고 한다. 누르기의 ‘달인’으로 전국 대회 선수권까지 차지했던 그는 쉴새없이 상대를 몰아붙이고 제압해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곧 승리의 비결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철학’ 탓인지 장장 25년만에 펜타곤에 재입성한 럼스펠드는 처음부터 국방부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려 들었다. ‘코드 인사’를 단행, 현역에서 은퇴한 왕년의 심복들을 줄줄이 특보로 임명해 친위대를 구성한 그는 정보를 독점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조르기에 들어갔다. 1차 제압 상대는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국방부내 장성들이었다.
일단 그의 눈 밖에 난 국방부내 군 인사들은 수시로 장관실로 호출돼 몇 시간씩 고문 같은 ‘강의’를 들어야했다. 장관과 견해차가 심한 군 지휘관들은 아예 침묵하거나 옷을 벗는 것 외에는 달리 택할 방도가 없었다.
현역 최고위 장성인 합참의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합참의장에 오른 에릭 신세키 육군 대장은 “최소의 병력을 이용한 전격적인 바그다드 진격 작전”을 주장한 럼스펠드와 정반대로 “되도록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전후 치안 유지가 가능하다”는 독자적 견해를 제시했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 럼스펠드는 그의 전역식에 불참하는 방법으로 일벌백계의 추가 ‘보복’까지 가했다.
정책입안을 해야 할 고위 간부들은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장관의 눈치만 살피며 우왕좌왕 했다. 럼스펠드는 재임 6년간 국방부를 완전 장악했지만 그의 ‘개인적 성공’은 ‘조직의 마비’를 가져왔다.
흔히 지도자는 다양한 악기의 서로 다른 음색을 모아 화음을 이루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견된다. 하지만 럼스펠드는 지휘자가 아니라 던지고 조이고 누르는데 익숙한 레슬러였다.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패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것은 감은 만큼 풀어야 하고 누르는 만큼 품어야 한다는 평범한 ‘관계의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강규 국제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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